숙명의 바다 그린 ‘그랑 블루’ 감독판 핏빛 생존기 담은 ‘슈퍼 피쉬’ 3D 극장판 존재증명 위한 한판승부 ‘폭풍속으로’ 운명 거스른 자유의 몸짓 ‘웨일 라이더’ … 내 마음속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여름, 누구나 바다를 꿈꾸고, 바다로 향하는 계절이다. 그러나 진짜 바다는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소년은 모험을 꿈꾸며, 청년은 뜨거운 태양과 거센 파도에 맞서고, 여인은 수평선 같은 자유를 갈망한다. 남자는 가족을 위해 고기를 잡으며, 노인은 썰물과 함께 청춘을 떠나보내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의 바다란, 어찌 해볼 도리 없는 공포이자 숙명이며 그것을 넘어서려는 모험이고 열정이며 생존이고 자유이며 추억이 아닌가. 바다는 누구나 시를 짓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하며, 파도를 타게 만들고, 철학에 잠기도록 하고, 사랑을 하게 만든다. 바다는 빛나도록 푸른 수평선이자 도전을 요구하는 거센 파도이고, 세상을 집어삼킬 듯 속을 알 수 없는 심연의 아가리인가 하면, 사랑을 품고 자연의 섭리와 삶의 진리를 가르치는 신이기도 하다. 여름은 ‘영화의 바다’보다는 ‘바다의 영화’에 빠질 만한 계절이다.

그 첫손에 꼽힐 만한 작품 중 한 편이 ‘그랑 블루’다. 무려 국내 개봉 20년 만에 원작에서 58분이 추가되고 화질을 개선한 리마스터링 감독판이 25일 개봉했다. 1990년대 많은 관객과 청춘들로 하여금 ‘블루’를 사랑하게 만든 영화라고 한다면 장 자크 베넥스 감독의 ‘베티 블루’와 크지슈토프 키엘로프스키 감독의 ‘세가지 색 블루’, 그리고 바로 이 작품이었다.

‘그랑 블루’의 바다는 푸른 색 중에서도 저 밑바닥의 검푸른 빛, ‘심연의 블루(deep blue)’다. 자크(장-마크 바 분)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잠수 사고로 잃고 바다와 돌고래를 가족으로 여기며 외롭게 성장한 인물. 엔조(장 르노)는 그의 유일한 친구이자 어린 시절부터 잠수실력을 겨루곤 했던 경쟁상대다. 이윽고 둘 모두 성인이 되고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날, 프리다이빙 챔피언이 된 엔조가 자크를 대회에 초대하면서 최후의, 숙명적인, 그리고 치명적인 단 한 번의 잠수를 하게 된다.

바다의 심연, 누구도 함께할 수 없고 오로지 혼자만이 감당할 수 있는 공간에서 죽음마저 받아들임으로써 존재를 증명하려는 한 인간의 역설이 감동을 준다. 헤밍웨이 원작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의 바다도 삶의 증명이자, 엄연한 숙명의 바다였다. 대어를 낚았지만 상어에게 뜯어 먹혀 앙상한 뼈만 매달고 돌아오는 배 위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던 앤서니 홉킨스(1990년작)의 표정이 관객들에겐 긴 여운으로 남았다. 노인뿐만은 아니었다. 인류는 바다와, 바다의 주인인 물고기들과 수만년에 걸쳐 싸움과 화해를 반복해왔다. KBS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슈퍼 피쉬’의 3D 극장판은 세계 24개국에서 2년간 촬영하며 인류와 물고기 간의 10만년간의 공존 및 투쟁기를 그린 작품이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바다 이면의 핏빛 생존기는 바다의 또 다른 얼굴이다.

바다와 싸우던 남자도, 노인도 처음엔 소년이었을 것이다. 리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인생이라는 바다의 항해를 시작한 소년의 바다를 그린다. 소년의 바다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꿈이자 여행이다. 그러나 이내 닥칠 시련이며, 평화로운 잠에 엄습하는 악몽이다. 가족과 함께 올라탄 배가 침몰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아 구명정 한 척에 몸을 의지한 채 다른 동물들과 함께 표류하게 된 소년. 작은 조각배가 전부인 세상에서 동물들은 서로의 살과 피를 탐하고, 결국 소년은 호랑이와 단 둘이 남는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자연의 섭리, 신과 선의에 대한 믿음, 공존이라는 인생의 지혜가 파이의 바다에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태평양, 소년의 조각배 위로 뛰어오르는 거대한 고래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영화다.

청년의 바다는 속도이며 질주이고 성난 파도이고 세찬 바다다. 누구에겐지 모를 분노이고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이며 상대가 누구라도 좋은 싸움이다. 존재증명을 위한 세상과의 승부다. 미국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한 ‘폭풍 속으로’는 무려 20년여 전의 작품이지만, 지금 보면 여러 모로 감회가 깊은 작품이다. 몇년 전 췌장암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배우 패트릭 스웨이지가 ‘사랑과 영혼’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의 작품이자, 키아누 리브스가 청춘스타로 풋풋하고 반항적인 매력을 보여주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소녀에게 바다는 무엇일까? 뉴질랜드 영화 ‘웨일 라이더’는 신화의 바다이자, 운명을 거스르고 자유를 향해 고래와 함께 날아오르는 자유의 바다를 보여준다. 부족의 지도자는 장남이어야 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고래등에 올라타 지도자가 된 소녀의 이야기다.

소녀는 곧 여인이 된다. 뉴질랜드 해안을 배경으로 한 제인 캠피언 감독의 ‘피아노’는 속박과 자유, 침묵과 울림, 애욕과 분노가 밀물과 썰물을 이루고 거센 파도를 일으켜 넘실거리는 여인의 바다다.

그리고 우리는 소년도 소녀도, 청년도 노인도, 남자도 여자도 모두 행복한 이상향으로서의 바다를 만난다. 전쟁 중 전략적으로 파견된 섬에서 주민들과 어울려 사랑을 이루고 주저앉은 군인의 이야기 ‘지중해’는 평화로운 안빈낙도의 바다. 위대한 작가 파블로 네루다와 일자무식인 우체부 청년의 따뜻한 교감을 그린 ‘일 포스티노’는 평등과 연대, 교감으로 삶을 찬미하는 ‘시인의 바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