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승완 기자]“정말 양산이 가능한 제품입니까. 시제품 아닙니까.”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쇼 CES2013. 삼성전자가 85인치 UHD TV(85S9)를 처음 내놨을 때, 현장의 관람객 대부분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검정색의 프레임이 받치고 있는 거대한 화면은 이전까지 알던 TV와는 완전히 달랐다. 마치 조형물이나 설치미술품 같아 보였다. 삼성전자의 ‘실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제품이 시연되고 성능이 공개되면서 사람들은 입을 모으기 시작했다. “TV의 개념이 바뀌었다”. CES는 망설임없이 ‘최고혁신상(Best of Innovations)’을 선사했다.
▶진화의 첫걸음은 화질=85S9가 세상에 나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선은 기존 HD화면의 4배의 화소를 자랑하는 UHD의 전용 컨텐츠가 없었다.
하지만 삼성은 업스케일링(Up-Scaling)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기존의 컨텐츠를 UHD급으로 자동변환 시켜주는 기술이다. 물론 단순하게 화면을 키워주는 업스케일링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삼성은 한 발 더 나아갔다.
“일반적인 업 스케일링은 보통 불필요한 노이즈까지 강조해서 화면 선명도가 오히려 떨어진다. 화질 원본을 분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85S9은 원본의 화질 소스를 추적해서 그 데이터에 맞는 최적의 업스케일링 알고리즘을 재구성한다. 디테일한 화질은 더욱 선명하게 살리고 노이즈는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동배 수석, 개발실)
화면의 움직임(동선)을 예측하고 새로운 영상을 생성해 끊김 현상을 제거하는 기술도 더해졌다. 화면을 1152개의 블록으로 나누는 마이크로 디밍 얼티밋(Micro Dimming Ultimate) 화질 엔진도 적용됐다. 어두운 부분을 표시할 때는 백라이트를 아예 꺼버려 명암비를 높이고 자연색을 구현하는 기술이다.
논란거리인 방송 표준 문제는 ‘진화’로 해결했다. 바로 ‘Smart Evolution’이다. TV 뒷면에 손바닥 만한 키트를 교체하는 것 만으로 CPU와 GPU 등의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 까지 동시에 최신 버전으로 바꿀 수 있게 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UHD 방송, 동영상 재생, 주변기기와의 연결 규격에 대한 표준화 논의가 진행중이다. 어떤 표준이 정해지느냐에 따라 구매한 UHD TV가 고가의 애물단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Smart Evolution’으로 향후에 어떤 표준이 정해지건 완벽한 대응이 가능하다.
▶공간을 새롭게 정의하다=85S9의 가장 큰 힘은 디자인이다. 패널과 넥, 스탠드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TV 대신 블랙의 프레임과 그 안에 자리한 얇고 단단한 패널의 조화가 전에 없던 TV를 만들어 냈다.
“기존의 룰을 벗어나라는 것이 경영진의 요구였다. 개선되거나 진화된 디자인이 아닌, 완벽하게 다른 정체성이 필요했다. 격이 다른, 최상위 종(種)의 TV를 준비해야 했다.”(강윤제 전무, 디자인 그룹)
4000만원이 넘는 ‘어퍼 프리미엄’ TV의 고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85S9은 그 자체가 공간이며 인테리어가 되어야 했다.기존 TV 디자인으로는 이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수천번의 시안이 등장한 끝에 디자인 팀이 도출한 컨셉트는 ‘프레임’이었다. 무엇을 담든, 어떤 발전된 기술이 적용되든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건 큰 난관이었다. 85인치 제품이지만 프레임 치수만 95인치가 넘었다. 며칠 밤을 새워 목업(실물 크기의 모형)을 완성해놓고 외부로 들고 올 수가 없어 분해한 후 마당에서 다시 조립하기도 수차례였다.
설비투자도 필요했다. 기존 도금조로는 원하는 품질을 기대할 수 없어 새 도금조를 만들었다. 프레임 소재로는 KTX 본체에 사용되는 최고 사양의 알루미늄을 확보했고, 기존과 다른 새로운 가공법을 선택하기도 했다.
제품 프레임의 다리 부분 하나만 가공하는 데 무려 3시간이 걸렸다. 1분에 60개 가공되는 일반 TV의 스탠드와 비교하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 정성이 투입됐다. 디자인의 고집은 결국 ‘클린 백’으로도 이어졌다. 복잡했던 TV 뒷면을 하나의 선으로 해결하게 한 것이다.
“품격과 절제라는 제품의 키워드를 도저히 양보할 수 없었다. 평소엔 개발 과정에서 다소 현실적 타협을 하지만, 85S9의 원형 디자인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김의석 수석, 디자인그룹)
▶고객을 위해 케이블 하나까지 바꿨다=85S9의 등장은 삼성전자의 기존 TV 생산 프로세스도 상당부분 바꿔놨다. 디자인, 기구개발, 마케팅, 물류, CS 등 전분야에서 TFT활동이 필요했다.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고객들의 주거지부터 생활패턴, 가옥 구조, 유통 환경, 심지어 엘리베이터 사이즈와 계단의 넓이까지도 조사했다. 그결과 국내 주상복합건물의 엘리베이터는 용량 상 85S9을 실을 수 없었다. 화물 엘리베이터나 사다리차를 이용한다 해도 베란다를 통과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프레임과 패널을 분리해 엘리베이터에 싣는 배송 방식을 택했다. 배송ㆍ설치하는 인원도 각자 역할을 따져 6명으로 결정됐다. 심지어 고객의 거실에서 제품 포장을 뜯는 순서나 조립 과정에서도 절제를 강조했다. 고객들에게 거실 벽의 구멍을 뚫고 TV를 설치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해서다.
“고객에 대한 이해와 분석은 계속돼야 할 숙제다. 우리는 기존 프리미엄TV를 구입했던 고객뿐만 아니라 그 위 단계의 고객들도 85S9의 구매층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래서 케이블 하나, 작은 서비스 하나에도 완벽을 기하려는 노력은 의미가 있다.” (이상훈 과장, 상품기획팀)
이렇게 세상에 나온 85S9 는 몇 달만에 세계 부유층들이 반드시 가져야하는 ‘명품’이 됐다. 미국과 유럽 중동의 부호들이 앞다퉈 삼성의 ‘새 예술품’을 손에 넣으려 한다. 4000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중국에선 7일간의 홍보행사동안 100대가 팔려나가기도 했다. 강윤제 삼성전자 디자인 그룹 전무는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은 끊임없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지만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회사가 맡아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며 “우리는 전 세계 모든 고객을 위해 최고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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