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자식을 보낸 부모는 죄인
외동딸 먼저 보낸 50대 어머니 자살 충동에 정신과 치료받아 색안경 낀 주변편견도 큰아픔 유가족 고통 가슴깊이 이해를
“죄송한 마음입니다. 부모님께. 나에 대한 꿈과 기대가 있었을 부모님께 죄송합니다. 다음 생에서 부모님을 다시 만난다면 그들의 정성에 내가 희생할 위치로 만나고 싶습니다. (중략) 제발 나 때문에 부모님의 인생이 흔들리지 않기를, 간곡히 간곡히 자격없지만 정중하게 머리숙여 부탁드립니다.”
꿈 많은 영화학도였던 김희재(가명ㆍ당시 28세ㆍ여) 씨의 유서다. 그녀는 2011년 5월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고등학교를 전교 1등으로 졸업하고 홀로 독일 유학까지 떠났던 수재였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이어진 집단따돌림의 상처, 한국사회의 부조리함, 예술가의 열악한 삶과 불안한 미래는 끝내 그에게 극단적 선택을 강요했다.
외동딸이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 장영숙(가명ㆍ58ㆍ여) 씨의 삶은 무너져내렸다. 세상의 전부였던 딸이었다. 장 씨에게 남은 삶은 목숨만 붙어있는 삶이었다. 바닥을 칠 때마다 자살에 대한 생각이 장 씨의 머릿속을 휘감았다.
“나도 딸처럼 죽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어요.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자요. 그런데 어느날 약이 안 듣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복용할 수 있는 최대량인데….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까 정말 죽고 싶더라고요.”
장 씨는 끝내 딸을 마음속에서 떠나보낼 수 없었다.
“딸이 세상을 떠나고 쌍꺼풀이 다 풀려버릴 정도로 울었어요. 길을 가다 누가 ‘엄마’하는 소리만 들려도 울고…. 여대생을 보면 우리 딸인 것 같아서 마냥 쳐다보고….”
사회적 편견은 또 다른 고통이다.
“사회적 편견이 너무 심해요. 딸을 무척이나 따르던 조카에게 딸이 아끼던 스탠드를 선물로 줬더니, 제 동생이 굉장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거예요. 왜 쓸데없는 걸 가져오느냐는 식으로, 무슨 불길한 물건처럼….”
하지만 이제 딸의 죽음은 장 씨가 끝내 살아야 할 이유가 됐다. 장 씨의 삶은 투쟁이 됐다. 장 씨는 슬픔과 죽음의 유혹에 맞서며 동병상련의 유가족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교수는 “분노와 죄책감, 상실감에 유가족은 자살충동이 높은 고위험군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자살은 남은 가족마저 자살충동으로 이끄는 위험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임지영(48ㆍ여) 씨는 아들을 잃었다. 임 씨의 둘째아들 권승민(당시 13세) 군은 2011년 12월 20일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었다. 학교폭력에 경종을 울린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의 시발점이었다.
승민이가 세상을 떠난 후 임 씨는 학교폭력 근절에 앞장서는 ‘전사’가 됐다. 임 씨는 지난해 7월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하루’라는 제목의 책을 펴내며 학교폭력의 무서움과 피해자의 고통을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처음부터 임 씨가 굳은 마음을 먹었던 것은 아니다. 아들이 떠난 후의 시간은 고통 그 자체였다.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가 됐다. 그러다보니 임 씨도 마음의 문을 닫게 됐다. 기뻐도 웃지 못하고, 슬퍼도 울지 못하는 ‘말 못하는 죄인’이 됐다. 하지만 ‘이러다가 내가 더 잘못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 힘들다. 너무 아픈데 좀 도와달라”고 주변사람에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임 씨는 아직도 승민이의 방을 그대로 두고 있다. 출근할 때마다 방문을 열고 “엄마 다녀올게”라고 말을 건네기도 한다. 승민이의 방은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다.
그는 “떠난 사람을 ‘그냥 잊으라’는 말은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 씨는 흘러가는대로, 담담하게 죽음을 인정하는 날이 올 때까지 내버려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의 도움은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디 자살은 끝이 아니라 주위에 큰 고통을 주는 가장 나쁜 선택임을 알았으면 좋겠다”며 학교폭력 피해자가 사라질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임 씨는 소망을 말했다.
윤 교수는 “자살 유가족은 자식을 잃은 슬픔에, 사회적 편견까지 더해져 고통받는 피해자란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이들을 지속적으로 살피고 보호해줄 수 있는 사회적 울타리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김기훈ㆍ서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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