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 2010년 아시안게임때 금메달 76개를 딴 한국이 일본을 크게 누르고 2위를 차지한 곳으로 우리 귀에 익은 광저우(廣州)는 알고 보면 2000년 역사를 가진 동양 최고(最古)의 무역도시이다. 2세기 무렵, 이미 로마인, 인도인과 교류하고 7세기경에는 아랍인들과 무역할 정도로 물류의 역사가 깊다.
중원에선 ‘온 몸에 문신을 하고 다니는 이상한 사람들’이라며 오랑캐 취급했지만, 그들은 자력으로 얻은 결실을 누리며 보란 듯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진(秦)ㆍ한(漢) 시대 중원에 정벌된 이후 2000년간 중앙으로부터 받은 혜택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19세기 중엽엔 국제무역량이 상하이의 3배가 넘을 정도로 스스로 부를 키웠다.
광저우, 선전(深圳), 주하이(珠海) 등 해양도시들이 위치한 광둥(廣東)성은 특유의 변화무쌍한 정치 경제 체제로도 눈길을 끄는 곳이다. 태평천국의 난을 주도했던 홍쉬치안(洪秀全), 근대 중국의 지도자 쑨원(孫文), 중국판 유토피아를 꿈꾸던 캉유웨이(康有爲) 등 개혁가가 이곳 출신이라는 점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1927년 오늘날 중국공산당 체제의 시험대라고 할 수 있는 ‘광둥코뮌’의 중심무대이다. 미국 여성 저널리스트 님웨일즈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이 ‘광둥코뮌’에 참여하기도 했다. ‘모든 권력을 인민에게로’라는 이상주의적 슬로건은 비록 3일천하로 끝났지만, 중국식 인민민주주의의 원형(原型)이자 본고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회주의의 대명사가 1979~1980년 들어서는 중국 자본주의 도입의 진원지로 돌변한다. 중앙정부로부터 경제특구-개방도시 지정이라는 사상 첫 선물을 받아들고 뼛속까지 일거에 바뀐 것이다.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하던 선전은 현재 1000만명이 살고 있으며, 인구밀집도 중국내 1위로 성장했다. 광둥성은 개방정책이후 중국 지역내총생산(GRDP) 규모에서 늘 부자도시 1위 자리를 지켰다. 중국시장협회 등이 지난해 6월 실시한 조사결과 ‘중국에서 가장 돈 벌 기회가 많은 지역’으로 꼽히기도 했다.
뭐든 ‘확’ 바뀌는 이곳 역사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광둥성의 발전 철학은 ‘새장을 비워 새를 바꾼다’(텅룽환냐오=騰籠換鳥)이다. 5년전 왕양(汪洋) 전 광둥성 서기가 내건 ‘텅룽환냐오’의 구체적인 내용은 2차 산업 중심 구조를 3차 산업으로 싹 바꾸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다. 27일 집계된 지난해 GRDP 수치에서 2위 장쑤(江蘇)성과의 격차가 크게 좁혀졌다. 신임 후춘화(胡春華) 광둥성 서기는 “적병이 이미 눈앞에까지 추격해 왔다”고 위기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텅룽환냐오’ 정책의 영향으로 지난 5년간 제조업을 중심으로 기업이 7만여 개나 퇴출되고, 3만여 개만이 신규 유치되는데 그쳤다.
이에 비해 난징(南京)과 쑤저우(蘇州), 우시(无锡) 등을 거느린 상하이 인근 장쑤성은 한국의 삼성 및 대전,광양과 긴밀하게 교류하고, 기업 용지 무료 제공, 면세 감세 등 유치전략을 꾸준히 구사했다. 2006~2010년 장쑤성이 유치한 외국자본이 중국전체의 4분의1이나 차지했다. 광둥성이 노리던 3차산업 마저 장쑤성이 가장 큰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투자도 30% 늘었고, 영국은 두배로 증가했다. 산업구조는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을 비롯한 제조업 뿐 만 아니라, 서비스업, 관광산업, 헐리우드 식 문화산업 등 다채롭다. 균형적인 산업 생태계 기반위에 변화를 도모한 것이다.
광둥의 정체와 장쑤의 발전을 지켜보면서 세상에 일거에 싹 바뀌는 건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긴다. 대통령이 박근혜로 교체된다고 해서 확 바뀔 것도 많지 않고, 급변할 이유도 없다. 그간의 성과가 어디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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