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 배경 영화 ‘지슬’ 유대인 사냥 다룬 ‘어둠속의 빛’ 이유없는 폭력에 몰린 그들

한겨울 동굴 속 섬사람들 길 아래 하수구 속 유대인들 절망속에서도 살아있는 공동체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긴다. 살을 따듯하게 보듬던 태양 아래로는 이제 총과 탱크, 그리고 제복 입은 군인들뿐. 격발의 총성과 시야를 흐트리는 포연을 피해 땅 밑으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긴다.

‘빨갱이 폭도’와 ‘유대인’이라고 불리던 그들. 죽을 자리가 될지도 모르는,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컴컴한 동굴과 하수로에서도 희망을 꿈꿀 수 있을까.

그래도 먹을 것은 입에 넣어야 하고, 몸뚱이는 다른 이의 온기를 품어야 한다. 죽음이 엄습한 어둠에서도 감자를 나누고, 남녀가 몸을 섞는다. 꿈틀대는 욕망은 희망의 근거이며, 선의와 연대야말로 희망의 조건이 아닐까.

1948년의 제주를 담은 영화 ‘지슬’, 그리고 1944년의 폴란드를 보여주는 영화 ‘어둠속의 빛’이 그려내는 풍경이다. 시대도 공간도 언어도 다르지만, 절묘하게 겹친다.

1948년 11월 제주섬 사람들은 “해안선 5㎞ 밖 모든 사람들을 폭도로 여긴다”는 미군정의 소개령을 듣고 삼삼오오 피란길을 떠난다.

갈 곳 없는 이들은, 차마 마을에 두고 온 일상들을 버리지 못한 이들은 잠깐 있다가 나올 요량으로 산속에 몸을 숨긴다.

제주의 ‘큰넓궤동굴’(크고 넓은 동굴이라는 뜻)이 생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을 품었다.

도대체 바깥에선 무슨 일이 있어나고 있는지, 왜 몸을 피하고 어둠 속에 숨어야 하는지 그들은 모른다. 오로지 무서운 것은 제복을 입은 자들이 들고 있는 총과 칼, 그리고 그들이 가진 정체 모를 분노, ‘빨갱이’들을 둘러싼 흉흉한 소문뿐이다. “폭도들이 과연 있긴 있냐”며 그들은 묻는다. 대답해줄 이는 아무도 없다.

‘지슬’은 1948년 미군정과 토벌대에 의해 좌경 폭도 세력으로 몰려 제주의 양민들이 희생된, 우리 현대사의 비극, 제주 4ㆍ3 사건을 소재로 한 오멸 감독의 영화다.

‘지슬’은 제주도 방언으로 ‘감자’라는 뜻이다. 동굴 속에 숨은 이들에게 감자는 생명이고, 연대이며, 오래된 공동체다. 동굴에 숨어서도 마을에 남은 돼지 밥 걱정을 하고, 이웃 처녀 총각 시집 장가 보낼 생각하며, 숟가락 숫자까지 속속들이 아는 누구네 노모와 아이들의 근심을 나누는 사람들. 그들의 허허로운 수작 위로 끔찍한 비극이 시시각각 다가온다.

신위(神位ㆍ영혼을 모셔 앉히다), 신묘(神廟ㆍ영혼이 머무는 곳), 음복(飮福ㆍ영혼이 남긴 음식을 나누어 먹다), 소지(燒紙ㆍ신위를 태우며 드리는 염원)라는 제의의 형식 속에 제주섬 사람들의 비극을 그렸다.

아그네츠카 홀란드의 폴란드 영화 ‘어둠 속의 빛’은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폴란드의 리버포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독일군이 진격하고 폴란드 나치군이 장악한 도시. ‘유대인 사냥’이 한창이던 때에 빈집털이와 하수구 수리로 생계를 이어가던 보잘 것 없던 폴란드 남자 소하가 돈을 받고 유대인들을 지하 하수로로 피신시켜 주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지슬’이 동굴 속에서 보낸 끔찍한 겨울 한철을 담았다면 ‘어둠 속의 빛’은 쥐가 들끓고 오수로 가득찬 지하 수로에서의 1년여간을 담았다.

유대인들의 안전과 목숨을 돈과 바꾸던 소하는 점차 자신의 의뢰인인 유대인들에게 연민을 갖게 된다.

유대인들을 군인들에게 넘기면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끊임없는 유혹 속에서도 소하는 유대인들을 위해 먹을 것을 날라주고, 은거지를 찾아 숨겨주는 일을 계속한다. 대단한 사명감과 역사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은 매일 자신이 얼굴을 마주하는, 자신과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학자도 있고, 노동자도 있고, 어린아이와 꽃다운 처녀도 섞여 있던 유대인들은 극한 상황에서도 웃고 울며 사랑하고 부대끼며 노래 부르고 희망을 기도한다.

‘지슬’은 제주의 바람소리, 파도소리, 기묘한 산하와 토벌대가 장악한 마을의 살풍경, 동굴 속의 따뜻한 어둠을 대비시킨다.

‘어둠 속의 빛’은 한 뼘 땅 아래로 엇갈린 지상과 지하, 총칼 들고 제복 입은 자들이 학살을 벌이는 도시와 이유 없는 폭력에 몰려 몸을 숨긴 자들의 세상을 그린다. 죽음의 경계를 쳐놓은 것도 인간이었고, 그것을 허문 선의와 연대 역시 인간의 것이었다.

이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