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민상식ㆍ윤현종 기자]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민우(34ㆍ가명) 씨는 최근 5년간 사귄 여자친구와 올해 결혼하겠다는 계획을 포기했다. 신혼집을 알아보려고 몇달 간 발품을 팔았지만 전셋값이 많이 올라 신혼집을 구하지 못했고, 예식장 등 결혼에 들어가는 비용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1억원 정도를 갖고 신혼집을 구하기는 불가능했다. 돈을 더 모은 뒤 대출을 받거나 부모님께 지원을 받아야 결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허례허식 결혼문화와 전셋값 상승 등 결혼에 드는 비용이 신혼부부의 ‘신(新)등골브레이커’로 떠올랐다. 등골브레이커란 부모의 등골을 휘게 만들 만큼 비싸다는 뜻이다.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노스페이스’ 점퍼가 10대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나온 말이다.
이처럼 결혼비용이 계속 증가면서 신혼부부들이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실제로 결혼 비용이 3년 전보다 2000만원가량 늘어났다.
지난 10일 보건복지부와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2년도 전국 결혼 및 출산동향조사’에 따르면 신혼부부 1인당 평균 결혼비용은 남성이 7545만원, 여성이 5226만원으로 나타났다.
2007∼2009년 평균치보다 남성은 245만8000원, 여성은 1963만4000원 늘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여성의 결혼비용이 급증한 이유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주택비용을 마련하는 문화가 생긴 결과”라고 분석했다.
▶전세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직장인 장민석(32ㆍ가명) 씨는 4개월 째 수도권의 신혼 전셋집을 구하고 있다. 그가 찾는 집은 건축 10년이하의 전용면적 85㎡ 아파트다. 장 씨가 마련한 돈은 2억5000만원. 하지만 조건에 맞는 물건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이마저도 공급이 달리는지 공인중개사에서는 ‘지금 아니면 계약 못한다’는 반응뿐이다. 장 씨는 “결혼식은 다가오는데 얼마나 더 발품을 팔아야할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했다.
국토해양부 및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및 수도권의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41만1029건으로 전년대비 1.9% 증가했다.
이 가운데 새로 전세시장에 진입하려는 신혼부부들이 전셋집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는 것으로 파악됐다. 부동산업계의 집계에 따르면 1월 현재 서울의 3.3㎡당 평균 전세가 836만원에 맞춰 나온 전세 매물은 50여개 단지에 달했다. 하지만 대부분 수도권 외곽에 위치한 데다 전세 물량이 일부에 그치는 등 전세난 해소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 A공인 관계자는 “작년 말까지 매물 대부분이 소진됐다”며 “어떤 신혼부부는 전세가로 4억원도 ‘OK’라며 찾아온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서울 평균 시세에 맞춰 전세거래가 가장 많이 된 지역으로 꼽히는 동작구도 물량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사당동 B공인 관계자는 “이곳 교통이 편리하고 전세가도 싸다보니 매물은 나오자마자 계약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나마 신축단지의 매물은 제로에 가깝다.
나인성 부동산서브 리서치팀장은 “이번에 전세거래가 늘었다는 것은 전세 수요가 늘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예비부부를 비롯해 중산층ㆍ서민들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신혼집 마련 비용은 평균 1억5000만원=아예 전셋집 찾기를 포기하고 처음부터 부모와 함께 사는 신혼부부도 늘고 있다. 지난 1월 결혼한 강모(35) 씨는 현재 서울 송파구 소재 부모의 아파트에 아내와 함께 같이 살고 있다.
강 씨는 “결혼하기 6개월 전부터 전셋집을 구하지 이리저리 알아봤지만 결국 구하지 못해 부모의 집에 얹혀 살기로 결정했다”면서 “대출을 받아 전셋집을 구하면 곧바로 부모님 집을 나갈 것”이라 말했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 2월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미혼 직장인 1558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주택 마련 비용은 평균 1억4582만원으로 집계됐다. 1억~2억원 미만(37%), 9000만~1억원 미만(13.5%), 2억~3억원 미만(12.9%), 8000만~9000만원 미만(6.6%), 5000만원 미만(6.3%), 7000만~8000만원 미만(6%) 순이었다. 자금 조달 방법은 대출(34.5%), 적금 등 모아둔 돈 사용(32.7%), 부모님 지원(22.2%) 등이었다.
▶예물ㆍ예단 등 허례허식 결혼문화 여전=5월 결혼을 앞둔 이주영(32ㆍ가명)ㆍ김민영(29ㆍ가명) 씨는 예물을 마련하기 위해 최근 서울 종로 귀금속 상가 10여곳을 방문했다. 200만원 정도를 생각하고 매장을 찾았지만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 다이아몬드, 진주 등 예물세트를 생략하고 개별제품으로 사기로 했다.
웨딩업체 아이웨딩의 자료에 따르면 평균예물비용은 2008년에는 530만원, 2009년 520만원, 2010년 510만원으로 평균 500만원이 넘는다.
한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는 “예비부부가 가장 고민하는 게 바로 예단과 예물이다. 아직 허례허식이 많이 남아 있어 예비 부부들 사이에 예물ㆍ예단과 관련해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면서 “예물과 예단 때문에 결국에는 결혼을 파행으로까지 몰고 가는 경우도 적잖다”고 말했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 2월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미혼 직장인 1558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혼수 및 기타 결혼 비용은 평균 5484만원이었다.
▶알뜰 결혼식 등장=고비용 결혼식 대신 알뜰 결혼식을 치르는 예비부부들이 등장하고 있다. 허례허식 대신 자신들만의 결혼문화로 절약하겠다는 인식 전환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 소재 모 웨딩업체는 지난 1년 간 낮 시간대 보다 20%가량 가격이 저렴한 야간 웨딩의 예약과 폐백을 생략한 예식이 10~20% 정도 늘었다.
시민단체인 무료결혼식추진운동본부에서는 스튜디오 촬영과 드레스 대여, 메이크업을 시중가의 절반 정도 가격인 110만원대에 진행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전체 이용자들의 30%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료결혼식추진운동본부장 관계자는 “모두에게 부담이 되는 고비용 결혼식 대신 거품을 빼고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결혼식이 많이 늘어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