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일본 도쿄돔에서 작은(?) 행사가 열렸다. 요미우리 자이언트 출신 타자 2명에게 국민 영예상을 수여하는 자리였다. 5만명의 관중이 몰렸고 이중 이 행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사가 한 명 있었다. 일본 보수화와 우경화에 몰입하고 있는 아베 신조 총리다.

이 행사의 주인공은 70년대 일본 타격왕이었던 나가시마 시게오와 미국에 가서도 타력을 뽐냈던 마쓰이 히데키 두 사람이었다. 중늙은이가 된 이들은 지금도 일본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걸출한 타자들이다. 이 자리에 아베 총리가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사실 이 행사는 일본 야구계, 좁게는 요미우리에만 의미가 남다를 뿐 그렇고 그런 행사였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나타남으로써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다. 더구나 그의 등번호가 96번이어서 얘깃거리가 되었다.

왜 96번이었느냐는 질문에 아베총리는 96번째 총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가볍게(?) 받아 넘겼다. 하지만 미디어들은 오는 7월 선거를 통해 자기 세력을 부풀린 후 교전권을 금지하고 군대 보유를 금지한 일본 헌법 9조를 바꾸기 위해 정족수를 엄격하게 규정한 헌법 96조 개정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다. 야구선수 등번호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한 아베의 잔꾀가 얄밉다.

야구선수의 등번호는 언제 생겼을까. 1926년 4월 16일 클리브랜드 인디언스(지난해까지 추신수 선수가 뛰었던 팀)가 제일 먼저 선수들에게 고유번호를 달고 경기에 나서도록 했다는 얘기다. 이를 시작으로 이틀 후에는 양키스가, 그리고 1934년에는 자이언트(당시는 뉴욕 연고)가 뒤를 따르면서 점차 다른 팀으로 퍼져 유니폼 등번호가 정착됐다고 전해진다.

등번호가 도입됐을 때 선수들은 썩 내키는 모습은 아니었다. 죄수번호나 가축의 일련번호 같은 인상을 준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금도 MLB의 많은 선수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등번호는 처음 타순대로 매겨졌다. 양키스의 베이브 루스는 3번, 루 게릭은 4번 등으로. 1939년 루 게릭이 지병으로 은퇴한 후 그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그의 등번호는 영구결번으로 결정되었고 이 전통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한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스포츠 종목도 걸출한 선수들의 고유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처리하고 있다,

등번호는 원칙적으로 선수 스스로 정한다. 그러나 한 팀에 같은 번호를 두 선수가 함께 쓸 순 없다. 등번호와 관련한 숱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다른 팀으로 옮긴 선수가 자기가 좋아하는 번호를 계속 사용하기 위해 돈을 주고 그 번호를 사는 경우도 있었다. 연봉 끝자리가 99센트인 선수의 경우 99번을, 하와이 출신의 선수는 50번째 주 출신이라는 뜻으로 50번을 택하기도 했다.

오마 올리베어(Omar Olivares)는 자기 이름의 첫자를 따 00번을 달기도 했다. 아무튼 등번호는 선수 각자의 취향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등번호를 아베는 정치적인 야망에 쓴 것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정치인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청정지역인 스포츠 경기 현장도 정치적 야망 때문에 오염될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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