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관객이 자동차 유력구매자 괴력의 슈퍼히어로 작품 주요타깃

자동차 업체 협찬…PPL 광고효과 영화사는 제작비 절감 ‘윈윈게임’

지난 4월 24일 할리우드의 엘 캐피턴 호텔 앞. 두 눈을 부릅뜬 듯 한 전조등을 빛내고, 사자가 그르렁대는 듯 한 배기음의 빨간 스포츠카 한 대가 도착했다. 문을 열고 내린 인물은 할리우드 스타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그의 부인인 수전 다우니였다. 영화 ‘아이언맨3’의 시사회가 열리는 날이었고 주연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막 내린 차는 아우디의 전기 스포츠카 R8 이-트론(e-tron)이었다. ‘아이언맨3’의 천재 과학자이자 슈퍼히어로 토니 스타크도 허구의 인물이고, 그가 입고 날아다니는 첨단의 로봇 슈트도 가상의 존재이지만,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실재’하는 것이 있다면 아우디의 차였다.

‘아이언맨’ 시리즈엔 1편부터 토니 스타크의 애마로서 트레이드마크가 된 R8과 그의 비서이자 토니 스타크의 무기회사 CEO인 페퍼(귀네스 팰트로 분)의 S7 스포트백을 비롯해 플래그십 세단인 A8, 고성능 스포츠 세단인 S5, SUV인 Q7 등 아우디의 기술력이 응집된 각종 차종이 총출동했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 기업 브랜드나 상품을 노출시키는 마케팅을 의미하는 PPL(products in placement)이다. 아우디 미국 지사의 브랜드 마케팅 담당 사장은 “우리 회사로선 전략적인 컬래버레이션(협업, 제휴)”이라며 “영화 속에서 아이언맨 캐릭터가 편수를 이어가며 끊임없이 첨단 기술의 개척자로서 진화를 거듭하는 것처럼 R8도 혁신의 선구자로서 입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국내에서도 최근 국산차와 수입차 브랜드가 앞다퉈 영화와 TV드라마에 협찬을 통한 PPL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할리우드 영화는 지난 1930년 뮤지컬 ‘황금광들’에 뷰익이 등장한 이래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의 마케팅 격전장이 돼 왔다. 특히 영상기술이 집약되고, 자동차의 유력구매자인 남성관객이 많은 액션 영화, 그중에서도 괴력의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작품이 타깃이 됐다.

최근 시리즈 중에선 ‘트랜스포머’가 미국 자동차 산업의 부활을 알리는 상징이 됐다. 주인공 샘(샤이아 라보프 분)의 수호천사처럼 등장하는 자동차 변신로봇 ‘범블비’의 쉐보레 카마로를 비롯해 GM의 대표차종들이 대거 동원됐다. 카마로는 ‘트랜스포머’의 1편이 선보인 2007년 이후 매해 10% 이상 판매고가 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영화 속 노란색 차량 판매가 급증했다. 3편에선 메르세데츠벤츠의 SLS AMG와 이탈리아 고급 스포츠카 페라리가 합류했다.

‘트랜스포머’로 재미를 본 GM은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이자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주연작인 ‘라스트 스탠드’에도 협찬했다. 영화 후반부 악당이 탄 콜벳과 카마로의 경주는 작품의 하이라이트였다. ‘다크나이트’ 시리즈에서 배트맨은 람보르기니를 ‘튜닝’한 배트카와 BMW의 모터사이클을 탄다. ‘007’ 시리즈에선 제임스 본드가 영웅이지만, 또 다른 주인공은 그의 애마인 애스턴 마틴이다. 지난 1995년 ‘골든 아이’ 편에선 제임스 본드가 잠시 BMW의 스포츠카 Z3에 앉기도 했지만, 1억달러로 알려진 포드의 협찬비 덕에 다시 ‘조강지처’인 애스턴 마틴으로 돌아왔다. 최근작인 ‘스카이폴’에선 애스턴 마틴의 1960년대 올드카가 등장했다.

그렇다고 자동차 브랜드들이 남성들만 ‘고객’으로 모시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의 로망인 ‘섹스 앤 더 시티’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웨딩 드레스와 지미 추의 구두말고도 메르세데츠벤츠가 있었다. 미래의 고객, 아이들을 위한 전략도 있다. 차를 의인화한 애니메이션 ‘카’ 시리즈에선 포르셰, 콜벳, 벤틀리, 레인지 로버, 롤스 로이스 등의 디자인을 닮은 캐릭터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전 세계적인 흥행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아이언맨3’처럼 PPL이 거두는 광고효과는 엄청나다. 영화사는 자동차회사로부터 막대한 물량을 협찬받으면서 제작비를 아낄 수 있다. ‘윈윈 게임’이다. ‘트랜스포머’ 1편의 경우 65대의 차량을 GM으로부터 지원받았으며, 영화사는 약 300만달러의 제작비를 아꼈다. 미국의 경우 각 브랜드가 협찬용 차량을 적게는 수십대, 많게는 수백대 준비해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선 자동차 브랜드와 영화산업과의 협업을 ‘빅 비즈니스’ ‘블록버스터 비즈니스’라고 표현하고 극중 자동차가 주인공 이상의 비중과 위용을 드러내는 일련의 작품들을 포르노그래피와 견줘 ‘카르노그래피’라고 할 정도다. 한국 차로는 현대 EF쏘나타가 ‘본 슈프리머시’와 ‘우주전쟁’ ‘허트로커’ 등에 등장하기도 했지만 우연의 결과물이었으며 본격적인 PPL로는 ‘인셉션’의 제네시스가 거의 유일하다. 한국 자동차가 싸구려 이미지를 벗고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해선 하루빨리 슈퍼히어로를 운전석에 앉혀야 하지 않을까?

이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