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하고 학교폭력에 사건사고 언제쯤 감동의 휴먼드라마 볼수 있을지
고교생 죽음 둘러싼 음모 다룬 ‘명왕성’ 경쟁·승자독식 참혹한 교육현장 그려
학교 뒷산에서 시신이 발견된다. 명문사립고에서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던 수재 유진(성준 분)이라는 학생이었다. 현장에 떨어진 휴대폰과 학생들의 증언으로 희생자와 같은 반 학생인 준(이다윗 분)이 가장 강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명문대 입학률이 높은 사립고의 성적 상위권 학생답게 준은 형사 앞에서도 ‘무죄추정의 원리’를 들먹이며 “범인은 내가 아니다. 심문 때문에 고3인 내가 대학에 떨어지면 책임질 거냐”며 오히려 얼굴을 붉힌다. 준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학교의 분위기도 이상하다. 교장은 “학생 하나 죽은 거 갖고 호들갑떨 것 없다”며 “다른 아이들 공부에 방해되니 조용히 넘어가자”고 형사에게 이른다. 과연 이 학교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 ‘명왕성’(감독 신수원ㆍ7월 11일 개봉 예정)의 학교는 음산하고 불길하며 서늘하고 살풍경하다. 우정과 사랑 대신 음모와 범죄, 폭력이 일상화한 공간이다. 심지어 살인마저도 거리낌없이 자행되는 곳이다.
영화는 가난한 준이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자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명문사립고로 전학을 가게 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 한 학생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하나둘씩 풀어간다.
학교에는 몇 명의 상위권 엘리트 학생만으로 구성된 스터디그룹이 있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준이 비밀 모임을 넘보면서 비롯된 비극을 그렸다. 스터디그룹은 철저하게 자신들만의 ‘지위’와 ‘규율’을 유지하는 끔찍한 규율이 있었던 것이다. 자살과 살인 등 죽음이 멀지 않은 공포와 스릴러의 공간으로 묘사된 학교는 ‘지나치게 극단적’이라고 할 법도 하지만, 전국 각급 학교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은 차라리 현실이 영화보다 더 극적이라는 생각을 앞서게 한다.
학교 내 비밀 엘리트그룹과 그들을 응징하는 전학생의 이야기를 그린 1989년작 할리우드 영화 ‘헤더스’(감독 마이클 레만)는 차라리 환상이고 장난으로 보인다. 우리의 학교는 언제부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50여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면 1960년대 한국 영화 속에서 학교는 ‘계몽과 낭만의 공간’이었다. ‘사격장의 아이들’(감독 김수용)에선 전쟁의 폐허 속에서 술과 노름, 가난에 빠져 사는 부모를 두고도 탄피를 주워팔며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내일의 희망을 북돋우는 여교사(김지미 분)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유현목 감독의 ‘수학여행’은 열정적인 선생님(구봉서 분)의 도움으로 난생 처음 수학여행차 상경한 낙도의 어린 학생들이 “우리 마을도 서울처럼 만들겠다”고 결심한다는 내용의 영화였다. 아역배우 안성기가 실명 그대로 출연한 ‘얄개전’(감독 김승호)에선 매일 짓궂은 장난과 말썽만 피우던 개구쟁이가 모범 중학생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줄거리를 담았다. 전후 ‘교육’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던 한국사회의 꿈이 반영된 작품이다.
학교가 영화 무대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1970년대 후반이었다. 이덕화 임예진 주연의 1976년작 ‘진짜 진짜 잊지마’를 시작으로 고교 청춘물이 붐을 맞는다. 청바지와 통기타로 대표되는 청년문화 한편에서 중고등학생, 즉 10대 후반의 청소년을 가리키는 ‘하이틴’이 대중문화의 새로운 소비주체이자 하위집단으로서 시민권을 획득하게 됐다는 징표이기도 했다.
‘진짜 진짜’ 시리즈는 로맨스 멜로 드라마의 학원 버전이었고, ‘고교얄개전’ 시리즈는 개성 만점 말썽꾸러기의 좌충우돌 학창생활을 그린 코미디였다. 이때의 학교는 10대의 풋사랑과 사춘기의 ‘불량기’, 가난하지만 공부 잘하는 학생의 내일이 어우러져 유쾌한 세계였다.
그러던 것이 입지지옥으로 한 해에도 수십명의 학생이 자살하고 참교육을 외치며 전교조가 출범한 1980년대 말, 한국영화의 학교는 비로소 현실을 반영한 공간이 된다. 젊은 감독은 10대의 고민과 목소리를 담은 영화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그 기점은 강우석 감독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였다. 이후 청춘로맨스와 교육문제에 대한 사실적인 접근 사이에서 다양한 학원영화가 이어졌다. 1998년엔 ‘여고괴담’으로 학원영화에 또 다른 획을 그었다. 경쟁과 입시로 일그러진 학교는 10대에게 공포 그 자체임을 알려준 작품이었다.
2000년대 들어선 ‘친구’ ‘말죽거리잔혹사’ ‘폭력써클’ ‘뚝방전설’ 등 학교의 폭력과 서열짓기를 통해 우리 사회와 한 시대를 비유한 작품이 유행했다. 특히 소년을 주인공으로 해 학교와 폭력을 관련짓는 영화의 경향은 최근의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과 독립영화 ‘파수꾼’까지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명왕성’은 경쟁과 승자독식의 논리만이 존재하는 교육의 참혹한 현장을 리얼하게 그려낸 작품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한국영화의 학교는 ‘장르’다. ‘싸움의 기술’을 배우는 ‘액션물’이며, 매일 악몽과 괴담이 펼쳐지는 ‘호러’이며, 힘겨루기로 남성성을 증명해야 하는 ‘활극’이고, 음모와 폭력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르는 ‘범죄 스릴러’다. 단 한 가지가 없다면, 그것은 ‘감동의 휴먼드라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