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증시 위기의 순간들
1956년 출범한 한국 증시는 60년 역사 동안 영광과 위기의 순간을 함께 겪어왔다. 그중에는 시장 자체가 뿌리째 흔들릴 정도의 위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증시는 곧바로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그 이상까지 오르는 저력을 보여왔다.
국내 증시의 첫 위기는 1962년 5월 일어난 증권파동이었다. 증권파동이란 정치자금을 필요로 했던 공화당 세력과 증권업계 종사자 일부가 공모해 투기를 벌이면서 거래소 기능을 한순간에 마비시킨 사건이다. 5월 11일 기준 당시 합산 방식으로 하루 만에 주가가 41.17% 폭락했다.
주식회사였던 거래소가 부도나면서 파산한 투자자들의 자살이 속출했고 시장도 장기간 휴장에 들어가는 등 후유증이 컸다. 사건 이후 거래소는 주식매매가 불가능한 공영조직으로 개편됐고, 1979년에는 명동에서 여의도로 이전하게 됐다. 그 전후로 1978년 ‘건설주 파동’과 1990년 ‘깡통정리’로 증시가 한때 흔들리기도 했지만 곧바로 본궤도를 회복했다.
1997년 찾아온 IMF 외환위기는 우리 경제뿐 아니라 증시에서도 가장 큰 시련의 시기였다. 그해 653포인트로 시작한 종합주가지수는 1997년 말 376포인트라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했다. 주요 기업들의 상장폐지가 이어졌고, 증권가에서는 동서증권과 고려증권 등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였다. 정부에 대한 회의론 속에서도 국민들은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버팀목 역할을 했고 증권가에서는 ‘바이 코리아’ 열풍이 불었다.
부동산 시장이 위축된 상태에서 펀드 붐이 일어나면서 코스피가 크게 상승했다. 당시 박현주 현 미래에셋 회장은 국내 최초로 뮤추얼펀드를 출시하는 등 성공 신화를 쓰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9ㆍ11 테러 직후였던 9월 12일에 12.02% 폭락한 경우도 있었지만 우리 증시는 2007년 2085.45포인트를 넘어서며 사상 첫 2000고지에 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2007년 12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듬해 다시 경제 한파가 찾아왔다. 2008년에는 코스피지수가 892.16포인트까지 곤두박질쳤고 한 해 동안 무려 40.7%의 주가가 날아갔다. 이후 점진적으로 회복, 2010년 12월 14일 코스피 2000선을 다시 회복했다.
양대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