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까운 분들만 눈치채고 있는 일인데, 내가 변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 크게 느낀다.
예전에는 비교적 여유 있고 침착한 성품이었는데 요즈음은 어떤 일이든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하다. 알고 보면 실수할 것에 대한, 실패할 것에 대한 걱정이다.
그러다 보니 거시적으로 보고 나 스스로를 위한 내 미래를 위해 차근차근 내실 있게 준비하고 공부하기보다는 당장 주어진 일들을 빈틈없이 해나가는 일에 신경이 집중돼 있다. 가까운 사람은 물론 나 스스로를 참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 모든 안달증이 왜 심화해가나 생각해봤다. 경쟁이 치열해지는데 시간이 갈수록 맡은 일에 대한 비중도, 책임도 막중해지기 때문이고, 많은 시선이 모이다 보니 진실과 무관하게 생겨나는 오해로 인한 구설에 받은 상처들도 깊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여름 숲이 무성하다. 숲을 들여다보니 살아가는 나무와 풀들의 경쟁도, 노고도 만만치 않다.
수관(樹冠)을 바라다보면 줄기들이 맞닿으며 조금이라도 많은 햇볕을 차지하기 위한 나무와 나무의 치열한 전쟁의 현장을 보는 듯하다. 그 나무들 아래 시기를 피해 이미 지난봄에 수분의 마친 작은 풀들의 열매도 보이고, 뒤늦게 자란 풀들이 키를 올리며 잎을 넓게 펼쳐내는 치열한 생존의 몸부림도 보인다.
생존에 진 생물들은 냉혹하게 사라져 버리지 않았던가. 나무들도 나처럼 벌레들에 상처입고, 미생물의 침입을 받으며 그렇게 견뎌내는 것이 아니던가. 저 짙푸른 초록 빛깔도 가장 왕성한 여름의 계절에 조금 더 열심히 자라려는 치열한 노력이 현장이 아니던가.
하지만 나무와 내가, 나아가 숲과 인간이 다른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사람은 경쟁에 치이며 더욱 욕심내고 각박해지며 주변을 힘들게 하지만 숲은 그 치열한 삶의 틀 속에서도 더없이 푸르고 평화롭게 발현된다는 점이다.
그 숲을 걷노라니 짙푸른 숲의 싱그러움이 나의 조급증을 가라앉히고 조금씩 조금씩 티 나지 않은 마음의 상처들은 치유되는 듯하다. 오래된 사찰을 가는 길에 언제나 좋은 숲이 이어지는 이유도 이처럼 숲길이 기도하는 마음이 돼 스스로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무성한 여름이 지나면 나무들은 또다시 모진 추위를 준비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숲은 그 절명의 순간들을 세상에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단풍 빛으로 발현한다. 거기에 숲은 경쟁의 마지막을 파괴의 잔해가 아닌 더없이 조화로운 공존과 평화로 마무리한다.
무더운 여름에 지친다면, 각박한 삶이 나를 힘겹게 한다면 숲으로 가자. 유유자적 그렇게 숲길을 거닐며 나무들의 왕성한 생명력에서 기운을 얻고, 생명의 초록빛과 향기로운 숲 향기로 위로를 받으며 스스로를 치유하노라면 어느결에 초록 숲의 평화가 우리 마음에, 우리 삶을 물들이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