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단기적 금리상승·통화가치 하락 이자부담 증가로 금융위기 노출 우려 증가
이머징 시장 2주새 78억8000만弗 유출 양적완화 축소 美경제 점진적 회복 시사 글로벌 자금 美주식·채권 유입 촉진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의 양적 완화 축소 발언으로 신흥국 주식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갈 위험이 커졌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흥 시장은 연준의 양적 완화로 달러 자금이 유입되면서 유동성 장세장에서 가장 큰 수혜를 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신흥국에서 ‘주가ㆍ채권ㆍ환율’의 트리플 약세가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미 아시아 증시가 급락하고 펀드에서 자금이 빠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연일 외국인의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는 한국 시장의 경우 그동안 유동성 장세에서 소외됐다는 측면에서는 타격이 크지는 않겠지만 당분간 신흥 시장 이탈 추세의 영향은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신흥국, 자금 엑소더스 전전긍긍=연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지난 5년간 12조달러 넘게 뿌린 유동성의 홍수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던 신흥국은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 분위기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연준이 유동성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서 글로벌 자금이 미국으로 이동, 신흥국은 급격한 자본 이탈을 피할 수 없다. 실제 지난달 22일 버냉키 의장의 축소 시사 발언 이후 신흥국 통화가치는 일제히 급락했다. 남아공 랜드가 9.3%, 인도 루피는 8.0% 추락했고 호주달러도 6.5% 평가절하됐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달러 유동성 확대의 수혜를 크게 본 아시아 등 신흥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일부 이탈하면서 단기적으로 금리 상승 및 통화가치 하락세가 가파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선진국의 금융위기 동안 세계 경제의 동력 역할을 했던 신흥국 경제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신흥국의 GDP 성장률은 2011년 6%대였으나 작년 3분기 4.5%까지 하락했다. 지난해 4분기 5.1%로 반등하며 경기 회복 기대를 낳았으나 올해 1분기 다시 4%대(4.6%)로 주저앉았다. 출구전략으로 달러 금리가 상승하면 그동안 외채를 늘린 신흥국이 과도한 이자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국가는 외채가 급증해 금융위기에 노출될 가능성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태국의 외채는 지난 4년간 연평균 19.6% 증가했고, 중국 역시 외채가 연평균 19.2% 증가했다. 터키의 단기 외채는 외환보유액의 130.8%에 달하고, 아르헨티나는 87.0%에 이른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금융 불안에 노출될 가능성이 큰 국가로 인도네시아, 브라질, 터키, 중국, 멕시코, 인도 등을 들 수 있다”며 “연준이 출구전략을 당장 단행하지 않고 시간을 벌어주더라도 여전히 신흥 시장에 대한 경계심을 놓을 수 없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용준ㆍ이상원 금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신흥국의 금융 불안은 성장 둔화와 구조적 취약점 등의 문제도 함께 안고 있어 단기간 내 진정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 “일부 취약 신흥국의 금융 불안이 우량 신흥국으로 확산될 위험도 상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흥국 자금 선진국 유입 본격화=이머징 시장에서는 이미 지난달 29일부터 두 주간 78억8000만달러가 유출됐다. 세계 시장에 퍼져 있던 달러가 미국으로 들어가는, 이른바 ‘달러 캐리트레이드의 축소’가 시작된 것이다. 실제로 한국 시장을 11% 이상 담은 글로벌 이머징(GEM) 펀드에서 석 주 동안 81억달러가 유출되고,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펀드(한국 비중 15%)에서도 넉 주간 39억달러가 빠져나가는 등 이머징 시장에서의 자금 유출은 확대되는 추세다. 반면 미국 주식형 펀드로는 자금이 5개월 연속 순유입되고 있다.
김후정 동양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금이 계속 빠져나가던 미국 주식펀드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신흥국 관련 펀드에서 자금이 이탈하고 있다. 2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브릭스 펀드에서는 최근 한 달간 1434억원이 빠져나갔고 중국 펀드에서는 2081억원, 러시아 펀드는 298억원, 중남미 펀드는 109억원이 각각 유출됐다. 반면 글로벌 펀드로 최근 한 달간 352억원이, 북미 펀드는 78억원이 들어왔다.
김형렬 교보증권 연구원은 “양적 완화 축소는 미국 경제의 점진적 회복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글로벌 자금의 상당 부분이 신흥국이 아닌 미국 주식ㆍ채권시장으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크다”면서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주식시장에도 외국인 자금 이탈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권남근ㆍ천예선ㆍ양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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