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찬수 기자]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구불구불 도로가 이어진 길로 20여분. 차는 막다른 곳인 신성마을에 다다릅니다. 버스노선의 간이종점이자 지도의 막다른 길인 신월동입니다. 시내버스가 하루에 네 번 밖에 오지 않는 외진 이 곳엔 보물 같은 문화재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천주교 신성공소(天主敎 新成公所)’입니다.
정류장에서 시선을 위로 올리거나 고개를 돌려도 잘 보이지 않고,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곳입니다. 하지만 공소는 정류장에서 ‘엎드려 코 닿을’ 만한 거리에 있습니다. 실로 지역 출신 교인이나 주민 외에는 알 방도가 없는 보석처럼 빛나는 성소입니다. 주변엔 말 그대로 논과 산이 전부. 산 중턱에 위치한 저수지를 제외하면 마땅한 관광 포인트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신성공소에 발을 들여놓으면 어떤 관광지보다 꽉 찬 마음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신론자라도 자연스레 걸음걸이가 다소곳해지고 마음가짐도 정갈해지죠.
신성리에 교우촌이 형성된 때는 1866년부터 1871년까지 지속된 ‘병인박해(丙寅迫害)’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가톨릭교를 배척하던 당시 정부 대관들이 교도의 책동을 비난하면서 거센 탄압을 했다고 알려져 있죠. 탄압의 교령이 포고된 이후 많은 선교사들이 학살 당하고, 수개월 새 신도들 8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 흩뿌려진 신도들은 산 속으로 도망쳐 군락을 이뤘지만, 충분한 환경과 먹을거리가 확보되지 않아 굶주려 죽는 이도 많았다고 합니다. 신성공소 역시 그 당시 탄압의 파도를 피해 피난길에 오른 신도들이 지은 곳입니다. 교우촌을 형성하고 1903년 본당이 설립됐다고 하니, 30년 간 그들이 겪었을 고난에 무거운 한숨부터 나옵니다. 공소건물은 그로부터 7년 뒤, 1909년에 본당과 함께 사제관으로 건립됐습니다. 1936년 본당은 매각돼 자취를 감추면서 사제관이 본당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죠.
본당은 한식 목구조에 팔작지붕 기와를 얹은 전형적인 한식 특유의 양식을 갖고 있습니다. 안내문이 없다면 ‘부유하게 살던 누군가의 집’이라는 오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단아합니다. 출입문은 전면과 후면 삼면에 배치됐습니다. 빛을 한껏 머금는 방향은 아니지만, 모든 문을 열면 빛이 충만하게 들어오는 구조입니다. 안에서 보면 미닫이창에 루버창을 설치해 내부로 스며드는 빛을 조절하도록 설계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을 들어서면 티 없이 맑은 흰색의 성모 마리아상이 객을 받아들입니다. 뒤편으로는 미사를 알리는 종과 건물이 위치해 있고, 옆 편엔 신자들을 위한 초가가 별도로 마련돼있습니다. 따스한 계절이 되면 전국에서 모인 신자들이 다과를 준비해 이 곳을 찾은 교인들에게 아낌없이 나눠 준다고 합니다. 박해를 받아 멀리 떠나온 그 옛날 교인들도 마땅한 식량이 없으면서도 끊임없이 나누고 베풀었겠죠. 이 곳을 찾는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바라는 일반적인 교리와는 달리 ‘삶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공소 곳곳엔 삶의, 나눔의, 민족의 흔적들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함께 찾아간 지인은 지역민이었지만 관리를 하는 주체에 대한 확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신도 혹은 지역민이라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었죠. 실제 공소는 누가 방금 다녀갔는지 정갈하게 정리된 상태였습니다. 방울이 떨어지는 수도꼭지나 곱게 담아놓은 공소 내부의 슬리퍼, 깔끔하게 닫힌 화장실 문 등 보이지 않는 주인이 관리하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고름을 단정하게 묶은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올 것처럼 말이죠. 지인이 이야기하듯 이곳은 또다른 의미의 안식처입니다. 지역민들은 이른 봄 혹은 늦은 가을엔 이 곳을 찾아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고 합니다. 주차를 할 장소는 있지만, 차를 댄 흔적은 없을 정도로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방문한다고 합니다.
전주나 정읍을 떠올리면 오로지 내장산만을 이야기합니다. 지역민들은 그 자체에 볼멘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관광지의 면모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는 부분, 정읍이라는 브랜드 마케팅에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못마땅함이죠. 하지만 소리 내어 곳곳에 숨어 있는 보물들을 꺼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발길이 많이 닿을수록 역사적 가치와 소중함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하는 탓입니다.
교인이든 아니든, 된장냄새가 솔솔 스며드는 초저녁 온기와 함께 성스러운 안식처가 필요하다면 잠깐 방문해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항상 문을 열려 있습니다. 뉘엿 넘어가는 해와 한적한 저수지 오르막길, 시간이 멈춘 듯한 시골길에 대한 운치도 있습니다. 초창기 성당 건축의 형태인 공소에 대한 역사ㆍ종교적 가치는 논외로 삼아도 좋습니다. 물론 스마트폰 등 디지털 문명은 멀리해야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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