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정책硏 1175명대상 설문 국내 한국인 피해율의 10배 재외공관은 덮기 급급

#1. 지난 2011~2012년, 베트남 하노이에 거주하고 있는 A 씨는 술집을 찾았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새벽 1시쯤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신 뒤 계산서를 받아 보니 술값이 부풀려져 있었다. 술집 주인에게 공안(경찰)을 부르겠다며 항의하자 주인의 태도가 돌변했다. 주인은 입구 셔터를 내린 뒤 유튜브의 잔인한 영상을 보여주며 칼과 편지봉투를 꺼내더니 “편지봉투에 오토바이키, 현금, 지갑을 다 넣고 가라”고 협박했다. A 씨는 결국 몸에 따로 지니고 있던 비상금을 넣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2. 자녀 교육을 위해 말레이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B 씨.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암팡지역 쇼핑몰에 있는 은행에서 자녀 등록금 용도의 현금을 찾아 문 밖을 나서자마자 오토바이 날치기를 당해 가진 돈을 모두 잃고 말았다. B 씨는 그 지역에선 ‘한국인 기러기 엄마들이 암팡지역 은행에서 현금을 잔뜩 찾아 나와 좋은 먹잇감이다’는 소문이 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의 재외국민 3명 중 한 명이 범죄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 내 국민들의 범죄 피해율 3%의 10배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을 지켜야 할 재외공관들은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장준오 박사팀 등은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지를 방문해 베트남 교민 715명, 말레이시아 교민 460명 등 총 1175명을 대상으로 범죄피해 실태를 조사했다. 이 설문조사에서 ‘범죄피해를 당한 적 있다’고 답한 교민은 베트남에서 250명, 말레이시아에서 132명 등 총 382명에 달했다. 범죄피해율이 32.5%에 이른 것이다. 교민 3명 중 1명은 범죄를 경험한 것이다. 이는 2010년 기준 한국 내 범죄피해율 3.3%의 10배에 육박하는 것인 동시에 외교부가 발표한 재외국민 범죄피해율 0.31%의 100배를 웃도는 것이다.

연구원은 이처럼 한국인을 상대로 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에 대해 “현지 공안(경찰)의 부패와 무책임한 재외공관의 행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현지 경찰들은 사건 해결을 빌미로 도난품의 50%에 상당하는 금품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뒤 신고자의 약점을 잡아 뇌물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보고했다.

또 한국인 보호에 책임이 있는 재외공관은 공관장이 자신의 부임기간 동안 범죄피해율이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신고가 들어와도 ‘쉬쉬’ 넘어가려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구원은 특히 실제 범죄피해 100건 중 1건만 공식집계된다고 주장했다.

연구원은 법무부 요청에 따라 2011년부터 필리핀,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지역 내 재외 국민의 범죄피해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법무부는 연구원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구체적인 범죄피해 방지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김재현 기자ㆍ김다빈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