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억 대작 ‘설국열차’로 돌아온 봉준호 감독
기차가 하나의 세계라는 설정 한정된 공간서 인간본질 이야기 늘 있어왔던 인류 보편적 드라마
뫼비우스 띠 원형 이미지 가진 기차 순환 아닌 숨막히는 공포로 그려
2014년 7월, 지구엔 ‘빙하기’가 찾아온다. 인류의 유일한 생존처가 된 곳은 순환선 기차 안. 이곳에 기차여행의 낭만은 없다. 유일한 ‘인류의 공간’에선 생존을 건 투쟁뿐이다.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끼어 있는 빈민굴 같은 꼬리칸의 승객들은 ‘전진의 욕망’에 충실한다. 머리칸 사람들은 지키려는 자들의 ‘유지의 욕망’으로 대립한다. 서로 다른 계급의 몸을 가진 자들은 폐쇄되고 통제된 공간 안에서 혈투를 벌인다.
한국영화 사상 최대인 43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덕에 봉준호 감독과는 어울리지 않는 상투적인 수식어도 붙었다. ‘글로벌 대작’. 물론 할리우드에서 ‘설국열차’는 중저예산 영화로 불린다. 영화 ‘마더’ 이후 4년 만에 돌아온 봉준호 감독을 2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2031년, ‘얼어붙은 미래’의 타임캡슐을 삼킨 공상과학(SF)영화의 형식이지만, ‘설국열차’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보편적 주제’를 이야기한다. 시스템 안에 갇혀 철저하게 엇갈린 두 계급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을 엿본다. 통제된 사회 안에 사는 사람들은 두 부류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 서로의 사정을 염두에 둘 필요도 없다. 영화에서는 아비규환의 꼬리칸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체제에 저항하는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고, 체제를 유지하려는 반대의 욕망도 들여다본다. 살과 살이 맞닿는 격렬하고 비극적인, 심지어 우아하기까지 한 ‘액션영화’이지만 ‘설국열차’의 메시지는 분명하고 강렬하다.
“SF영화이다 보니 추상적인 부분도 있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돌직구로 다가가게 됐죠. 기차가 ‘하나의 세계’라는 시작부터가 극단적인 출발이었습니다. 늘 있어 왔던 ‘인류 보편적인 드라마’예요. 단지 기차와 빙하기라는 독특한 설정을 빌려왔고, 한국의 동시대를 다루진 않기에 보다 직접적인 이야기로 만들어졌어요.”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를 통해 계급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을 관통하며, 체제로부터의 진정한 ‘탈출’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1.5km의 열차는 60량으로 나뉘어 1년 단위로 43만8000㎞ 길이의 전 세계를 순환한다. 출발점은 열차가 기원한 영국의 런던 어디쯤. 하나의 열차이지만 칸은 분리돼 있고, 열차칸은 인간의 층위를 가른다. 봉 감독은 이에 대해 “구조를 가지고 출발했다. 기차의 칸 구조가 네거티브의 구조”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아이와 젊은 여자는 하나 둘 사라지고, 노인과 성인남성들로 바글거리는 꼬리칸, 그 뒤는 하층계급의 반란을 막는 군인칸, 죄수를 벌하는 감옥칸으로 이어진다. 그곳을 지나서야 가진 자들이 향유하는 공간들(물공급칸, 식물칸, 수족관칸, 교실칸, 클럽칸)이 나온다. 전혀 다른 기차 안 세상은 미래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시간이 멈춘’ 미래로 그려지고, 더 나은 삶을 향한 갈망을 품은 꼬리칸 사람들은 그곳을 향해 나아간다.
“이 영화는 ‘판(시스템)’을 부정하는 이야기예요. 하지만 시스템을 부정하는 그 과정엔 혹독한 결과들이 있습니다.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통의 대가, 즉 희생이 뒤따른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그래도 나아가야 하는 때는 반드시 올 수밖에 없겠죠.”
전 세계를 순환하는 설국열차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원형의 이미지를 안고 있다. 빙하기가 다시 찾은 지구는 ‘인류의 끝’을 맞았지만 끝은 곧 ‘또 다른 시작’이다. 체제는 일정 지속기간을 거치면 무너진다. 꼬리칸 승객들의 혁명의 끝은 진정한 유토피아일까. 봉 감독은 “영화에선 원형의 영원함이나 순환의 느낌을 살렸다”며 “그것이 좋은 의미의 영원이 아니라, 숨막히는 공포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설국열차’ 안팎의 희망은 여전히 존재한다.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튼, 애드 해리스 등 할리우드의 특급배우들이 탑승했고, 배우 송강호와 고아성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러닝타임 125분의 적재적소에 파고든 명배우들의 ‘짧은 등장’은, 아쉬워도 “스토리의 세계는 냉정”한 탓이다. 개봉은 8월 1일이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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