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 해마다 7월이면 제주도에서 개최되는 재계단체 하계포럼은 ‘다보스 포럼’이라고 불렸습니다. 다보스처럼 글로벌 석학들이 총출동하는 자리였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모여 촌철살인 미래 화두를 제시했고, 지구촌 성장을 모색하는 관통의 키워드를 제공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전경련 제주포럼이나 대한상의 제주포럼은 그래서 세계 석학들의 경연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몇년간 ‘거두’들도 참 많이 왔습니다. 몇년전 제롬 글렌 UN미래포럼 회장은 녹색과 신사고 혁명이라는 제5물결을 부르짖어 큰 호응을 얻었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릭 매스킨 교수는 저성장시대를 뚫을 무기를 소개해 박수를 받았습니다. 아, 2009년 전경련 제주포럼에는 조지 W.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이 강연자로 나왔던 기억도 새롭네요.
이들 외에도 숱한 글로벌 미래학자, 노벨상 수상자, 글로벌기업 경영자들이 제주를 찾아 마음껏 자신의 철학을 공개했습니다. 그래서 한국판 다보스포럼이라는 얘기를 들은 거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올해 재계단체의 제주포럼에는 해외 석학이 사라졌습니다. 기껏해야 1~2명이 참석해 강연합니다.
24일부터 열리는 전경련 하계포럼에는 단 1명의 해외 학자가 초청을 받았습니다. 러셀 버만 스탠포드대 교수인데요. 그는 특강을 통해 ‘인문학적 상상력을 통한 비즈니스 가치 창출’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그를 제외하고는 강연 무대에 서는 이는 모두 한국 사람입니다. 앞서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도 그랬습니다. 해외 석학 초청에 인색하지 않던 상의도 이번에는 글로벌 학자를 많이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뭘까요? 답은 해외석학 몸값이 너무 뛰었다는 것입니다. 수년전부터 우리나라는 해외 석학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유난히 많이 치렀습니다. 새로운 경제, 새로운 사고, 혁신의 시대의 힌트를 글로벌 석학들에게서 찾으려는 시도였지요.
그러다보니 해외 강사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었습니다. 해외 석학 초청 경쟁이 지나쳤던 우리 책임도 큽니다. 너도나도 모시려다 보니 해외에서 이름 깨나 있다는 사람들의 눈높이는 점점 높아져만 간 것이지요.
이번에 모 경제단체는 아주 유명한 글로벌석학을 초청하려 했습니다. 1억원을 달라고 했다는 군요. 거기에다 공항 환영 및 리무진 제공, 원하는 호텔 제공 등의 의전까지 요구했다고 합니다. 5000만~6000만원으로 깎을 수 없겠느냐고 하자, 아예 연락이 끊기더라고 하더군요. 한국의 강연 무대를 ‘봉’으로 아는, 아주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들 석학이 반드시 영양가 있는 강연을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명세를 등에 업고 무성의하게 진부한 내용을 늘어놓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모 재계단체 관계자는 “몇년동안 해외석학 초청 강연을 해봤는데, 강의 준비가 매우 허술하다는 공통점이 보이더라”며 “신선미가 떨어지는 화두를 계속 울거먹는 것을 보고 해외인사 초청 자체에 회의감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군요.
해외석학 초청에 매달리지 않은 이유는 또 있습니다. 국내 학자의 수준도 상당히 올라갔기에 좀더 현실적으로 알찬, 비용도 아끼는 세미나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어서입니다. 특히 인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국내 유명 인사들의 강의는 오히려 청중들과의 소통에 낫다는 점도 해외석학에만 매달리지 않은 배경입니다.
이같은 이유로 당분간 제주포럼에서 최소한 ‘외형상의 다보스포럼’은 바라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주포럼 강연 인사 중 해외석학이 많이 없다고 행사 자체가 빈약한 것은 아닙니다. 거품의 100명보다 양질의 1명이 더 소중합니다. 올해 제주포럼을 계기로 해외 초청 인사의 거품을 빼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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