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것이…’ 여대생 청부살해사건 방송후 병원은 공식사과하고 검찰은 발빠르게 수사 착수했지만 시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을줄 모르고…

참회는커녕 발뺌·떠넘기기 일관 잘못한 사람은 정녕 아무도 없나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여대생 공기총 청부 살해 사건에 대해 두 차례 방송했다. 첫 번째 방송인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편을 보고는 분노가 일었다면, 25일 방송된 두 번째 방송 ‘죄와 벌-사모님의 이상한 외출, 그 후’편을 보면서는 허탈감이 생겼다. 이 프로그램을 본 사람이면 거의 느꼈음직한 그 허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지난 5월 25일, 2002년 ‘여대생 공기총 청부 살해 사건’의 주모자인 중견기업 회장의 ‘사모님’ 윤모 씨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수감생활을 피해 온 사실을 방송했다. 방송의 후폭풍은 대단했다. 윤 씨에게 진단서를 발급해준 주치의가 근무하는 세브란스병원은 병원장의 공식 사과와 함께 진상조사를 위한 교원윤리위원회가 열렸고, 검찰은 병원을 압수수색하는 등 발 빠르게 수사에 들어갔다. 또한 피해자 하지혜 양의 모교인 이화여대에서는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광고를 게재했다. 일반 시민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살인교사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교도소를 벗어나 VIP병실에서 생활하고 있다니. 그런데 국민들이 화난 것은 이 과정이 상식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느낀 허탈감은 이 과정을 만드는 데 일조한 소위, 힘있는 자들이 반성과 참회는커녕 발뺌과 떠넘기기로 일관하는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주모자는 물론이고, 검사 변호사 의사 등 이 사건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이 모두 형집행정지는 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졌다고 했다. 그러면 살인교사죄를 저지른 사람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형집행정지가 내려져 무려 4년에 걸쳐 교도소를 벗어나 있는 것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일까.

판사 사위의 불륜을 의심 하여 당시 법대생이던 하지혜 양의 살해를 지시한 윤 씨의 남편은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을 찾아와 취재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아내는 첫번 만번 잘못했지만 자신의 기업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고 하소연했다. 살인사건이 1년에 600건이 넘게 발생하는데, 12년 전 살인사건을 SBS가 굳이 리바이벌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형집행정지에 관련된 검사와 의사, 변호사에게 사례를 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고 했다.

사건을 수사한 한 형사에 따르면 윤 씨는 죄의식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자신은 살인을 지시한 적이 없고 조카와 그 친구들이 알아서 한 일이라고 떠넘겼다. 그리고는 지혜 양을 미행한 사람들에게는 경찰이 수사할 때 불리한 증언을 할 것을 막기 위해 돈을 준 정황들이 속속 포착됐다.

윤 씨에게 유방암과 파킨슨 증후군 등 12가지가 넘는 병명이 기재된 진단서를 발급해주며 수감생활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소견을 써준 세브란스병원 주치의는 취재하러온 PD가 ‘협진한 의사들의 의견은 주치의와 다르다’고 하자 “예의가 없이 이러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고 말하고는 취재진을 밀쳤다. 그리고는 “진단서 하나 가지고 형집행정지가 내려졌겠는가. 그쪽 검사들과 판사들의 고유 결정권이다”고 형집행정지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듯이 말했다.

형집행정지 신청서를 제출한 변호사와 이를 허가한 검사가 고교와 대학 동기 출신이라는 점은 ‘전관예우’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됐다.

하지만 형집행정지를 허가한 검사는 “검사를 내보내 윤 씨를 엄격하게 조사했는데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하더라”면서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발급해준 의사의 진단서를 무시할 수 있는 검사는 없다고 의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를 취했다. 의사는 검사에게, 검사는 의사에게 각각 책임을 넘겼다.

지혜 양 아버지인 하만길 씨는 “윤 씨 남편은 돈으로 합의하러 나를 만나자고 했다. 진실성이 없었다”면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큰 힘인데, 그것마저도 돈으로 환산했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우리 사회에서 배우고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발뺌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은 국민을 허탈하게 했다. “정말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그들만의 사법이 형성돼 있더라고요” 방송 말미에 나온 말이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 한 가정은 무너졌고, 이 일에 관여된 사람들은 아무런 잘못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 반성과 재발방지는 누구에게 요청해야 하나. 힘없는 사람들은 재수가 없지 않길 바라고 있어야 할까. ‘윤 씨의 청부살해사건’은 아직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서병기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