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정상참작 받을 수 있는 길은 열렸지만 뒤집기도 가능할까? 변론재개 이후 주목받은 최 회장의 첫 공판은 이렇게 요약된다.

지난 27일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문용선) 심리로 열린 최 회장에 대한 공판에서 재판부는 기존 공소사실을 동기, 범행 과정, 결과의 3가지 단계로 요약하며 동기 부분의 내용을 변경해 달라고 검찰에 요구했다. 재판부는 사실상 공소장을 직접 작성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세세하게 변경 취지를 설명했다. 때문에 검찰의 수용 여부와는 상관없이 요청된 내용은 판결문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요구한 내용에 따르면, 최재원 SK 부회장은 2007년 말께부터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의 투자권유에 따라 최 회장이 보유한 SK C&C 주식을 담보로 제공해 투자금을 조달하기로 계획했다. 최 회장의 허락도 얻었지만 SK C&C가 비상장 회사였던 탓에 자금 조달은 쉽지 않았다. 그러던 2008년 9월말께 최 부회장은 김원홍으로부터 투자 권유를 또 한 차례 받고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에게 SK C&C 주식 담보 없이 500억원 상당을 조달해보라고 요구했다. 김 전 대표는 조달 방안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SK계열사가 펀드에 출자하되 출자금을 선지급금 명목으로 지급받는 방식을 기획했고 최 회장 형제는 이를 허락했다.

검찰의 기존 공소 사실과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김원홍의 투자 권유’다. 기존 공소 사실에는 최 회장이 ‘김원홍에게 보낼 옵션투자금 등을 조달하기로 공모했다’고 돼 있을 뿐, 적극적으로 투자 권유를 받았다는 배경은 설명돼 있지 않았다. 검찰 수사의 초점은 최 회장이 어떤 수법으로 회삿돈을 빼냈는지, 투자 목적이었는지 횡령 목적이었는지 등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재계 3위의 대기업 총수가 무속인 출신 김원홍에게 ‘왜’ 마음을 홀딱 빼앗겼는지에 대한 질문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항소심 과정에서 최 회장은 김원홍이 배후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자신은 도리어 ‘사기 피해자’라고 강조했고, 지난달 30일에는 김 전 고문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지난 공판 과정에서 이를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재판부는 공소장 변경이 양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정상참작은 될 것으로 예상돼 최 회장 측으로서는 약간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이전 공판 과정에서 재판부는 “김원홍이 나쁘면 나쁠수록 최 회장은 그만큼 덜 나쁜 사람일 수 있다”고 밝힌 적도 있다. 다만 최 회장의 유무죄 여부는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부가 ‘공소사실의 핵심 본질’이라고 밝힌 ‘범행 과정’에 대해 최 회장도 시인하고 자백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이 SK 계열사로 하여금 베넥스 펀드 출자 및 선지급을 하게 했다는 부분이다. 재판부는 “도둑질의 목적이 달라진다고 해서 도둑질이 죄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를 돌려 표현했다.

재판부는 사건 배후에 김원홍이 있다는 점은 받아들였지만, 김원홍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것은 기각했다. 이미 제출된 증거만으로도 유무죄가 충분히 입증됐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김원홍의 입장은 변호인이 제출한 녹취록에 자세히 나와 있다. 탄핵 증거의 가치를 가지는지 잘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녹취록에는 “너(최 부회장)는 아무 죄 없고, 최 회장은 정말 더 죄가 없고, 내가 너희 형제를 속인 거잖아”라는 김 전 고문의 통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전 공판에서 녹취록의 신빙성에 의심이 간다는 뜻을 비친 바 있어 김원홍의 입장이 판결에 전혀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재판부가 김 전 고문이 이미 오염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수사망을 피해 해외에 체류하던 김 전 고문은 최근까지 SK 측과 접촉해 왔다. 대만 당국에 체포되던 시점에는 최 부회장과 함께 있었다고도 알려졌다. SK 측이 기획입국을 꾸몄다는 주장이 제기된 배경이다.

9월13일 항소심 선고에 법조계 안팎의 이목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