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장용갑 선생 부역 무죄판결 백범 비서 답장도 최근 발견

일제에 맞서 지역에서 징용 반대운동 등을 펼치며 항일에 앞장섰던 한 독립운동가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6ㆍ25전쟁 당시 공산당 측에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항일운동 관련 공적을 인정받지 못해왔다.

충남 홍성 출신 독립운동가 장용갑(사진ㆍ1911~1986) 선생의 이야기다. 선생은 최근 판결을 통해 명예가 회복됐으며 금명간 정부가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할 것으로 보인다. 독립운동 참여 사실을 증명하는 선생의 유품도 새로 발견돼 광복 68주년을 맞아 선생의 활약이 새롭게 조명받을 전망이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선생의 유족에 따르면 최근 선생의 유품 중 백범(白凡) 김구 선생의 비서였던 일연(一鳶) 신현상 선생이 1946년 선생에게 보낸 편지가 발견됐다.

‘대한민국 28년 2월 16일 주석판공실비서 신현상’이라는 관인이 찍힌 편지에는 ‘선생의 뜻을 주석(백범)에게 전달했으며 함께 새 나라 건설에 공동 분투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민족적 큰 틀에서 남북분단을 막고 좌우갈등을 해소, 독립국가를 건설하자’며 선생이 백범에게 보낸 편지의 답장이다. 나라를 걱정하고 분단을 막고자 했던 선생의 뜻이 나타난 증거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홍성공립공업전수학교(현 한밭대)를 수료한 선생은 일제에 맞선 학내 데모, 결성금광 임금체불 항의 사건, 강제징용 반대서명운동을 주동했다.

또 6ㆍ25전쟁 당시 출신학교 동문의 부탁으로 하는 수 없이 홍성군 은하면 인민위원장으로 부역했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공산당 살생부에 적힌 지역 우익 인사 100여명을 살려내 은하면에서는 단 1명의 사상자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6ㆍ25 이후 선생은 예비검속자로 분류돼 ‘빨갱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1975년에는 버스 안에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욕설을 했다는 혐의로 대통령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구속돼 5년형을 받았다. 형 집행정지로 9개월 만에 출소했지만, 타계할 때까지 ‘범죄자’라는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벗지 못했다.

선생의 아들 장재설 씨는 선친의 신원 회복을 위해 서울고등법원에 항소, 지난 6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선생의 한을 대신 푼 장 씨는 선생의 묘소를 찾아 추모제를 지냈다.

신상윤 기자/


ke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