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의 ‘독수리 5형제’…그들이 걸어온 길
상의, 종로 육의전 상인모임이 모태 무협은 해방직후 자립무역 기틀 전경련, 1961년 젊은 경제인 주축 설립 경총은 건강한 노사문화 정착 구심점 중기중앙회, 상생 바람타고 위상 높아져
경제단체의 역사는 ‘명(明)’과 ‘암(暗)’의 역사다. 대한민국 경제사를 일군 자부심은 ‘명’이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뒤따르는 정경 유착의 꼬리표는 경제단체의 어두운 과거일 수 있다.
우리 경제사는 경제단체의 발자취와 궤를 같이한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고통 속에 무너졌던 경제 기반을 되살린 ‘역군’으로,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화 물결이 휘몰아칠 당시 경제 체제의 중심을 잡았던 ‘주춧돌’로 활약해왔다. 하지만 정치권력의 소용돌이 속에 단체장의 희비는 엇갈릴 수밖에 없었고, 정권과의 밀착이라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때론 낙하산 인사의 산실이라는 오명도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과거는 새로운 미래의 방향을 낳는 씨앗이다. 현재 재계단체는 회원사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에 대한 ‘저격수’로, 동반 성장과 경제민주화를 함께 이뤄가는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의 오명을 벗고 환골탈태의 길로 달리는 것, 여기에 경제단체의 오늘 숙제가 있다.
▶ ‘위기’ 속 대한민국의 경제 기반을 일구다=경제5단체는 ‘독수리 5형제’라 불릴 만하다. 가장 오래된 곳은 대한상공회의소다. 1884년 한성상업회의소(현 서울상공회의소)를 전신으로 한다. 한성상업회의소가 만들어진 배경은 당시 일본 상인의 횡포에 맞선 국내 상인들의 ‘권리 찾기’에서 시작된다. 서울 종로 육의전 상인들이 주축이 돼 단체를 만들었고, 이후 부산ㆍ인천 등의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상공회의소가 생겨났다. 본격적으로 상공회의소로서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46년이며, 6년 후인 1952년에 상공회의소법이 제정됐다.
한국무역협회(무협)는 해방 직후인 1946년 설립됐다. 당시 한국 무역은 기초체력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자립 무역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제도와 정책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해방 직후 이러한 행정 공백기를 틈타 중국의 정크무역, 대일 밀무역 등이 성행하며 극도로 혼란한 시기가 이어졌다.
혼탁한 경제질서를 바로잡고 정부의 경제ㆍ무역 정책에 업계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국내 무역인들이 힘을 모았다. 당시 일본과 미국 유학을 마치고 사업가로 활동하던 김도연 박사(무협 1ㆍ2대 회장)를 중심으로 105개 무역상사가 뜻을 모았다. 그 결과, 1946년 7월 31일 무협이 정식 출범하게 됐다.
1953년 휴전하며 전쟁은 끝났지만, 전후 사회의 정치적 혼란은 이어졌다. 1960년대에 접어들며 세계 경제가 안정적인 고도성장을 지속했지만, 국내는 정치 혼란으로 경제 체제마저 흔들리고 있었다. 당시 정치혼돈기 속에서 자유시장경제 체제 구축에 힘썼던 소장 경제인들의 패기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오늘을 가능하게 했다. 1961년 ‘한국경제인협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전경련은 1968년에 현재 이름으로 개명했다.
초대 회장을 맡았던 이병철 회장은 해외 자본 및 투자 유치와 공업화를 통한 내수 경기 활성화에 힘썼다. 포항제철소,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현대자동차 등 여전히 한국 경제의 근간이 되는 기간산업이 처음 발을 떼게 된 것도 전경련과 당시 정부와 협력해 일군 결실이다.
▶함께 가는 중기ㆍ건강한 노사… 대한민국 경제를 ‘업그레이드’하다=대한상의, 무협, 전경련이 개발 역군으로서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다지며 국내 산업의 외형을 키웠다면, 동생들인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노사관계, 임금 문제, 복리후생, 산업 안전, 동반 성장 등 한국 경제의 내실을 다지는 역할을 하며 대한민국 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1970년에 설립된 경총은 노사관계에 특화된 단체로, 1990년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천명하기도 했다. 상생의 노사문화를 토대로 고용 촉진과 일자리 창출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에 힘을 써왔다. 정부의 기업 관련 정책에 사회 보장 및 고용 창출 요소가 반영될 수 있도록 자문하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고용노동 정책과 관련해서는 경총이 경제5단체 내에서도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1998년 IMF 체제 때는 신노사관계 정립 방안을 발표하며 건강한 노사관계 정립을 위해 힘썼다. 2000년대부터는 더 나아가 비정규직 보호, 근로문화 선진화, 공공 고용 서비스 강화 등에도 힘쓰고 있다.
중기중앙회는 1962년 설립된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를 모태로 하지만, 본격적으로 규모가 커지게 된 것은 1993년 중소기업연구원을 설립하면서부터다. 2006년부터 지금의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중소기업들의 권익과 발전을 위한 단체로, 전국에 퍼져 있는 62만여 회원 업체의 사업 영역을 보호하며 성장ㆍ발전을 돕는다. 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공제제도를 운용하며 중소기업들이 자금 문제로 고통받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실 고속성장이 이뤄지던 1970~1980년대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동반 성장 등의 가치는 크게 관심받지 못했다. 대기업을 위주로 한 성장, 발전이 이뤄지면서 중소 및 벤처기업 육성에는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다. 그 빈자리를 중기중앙회가 채워주는 셈이다.
▶때론 ‘파트너’, 때론 ‘저격수’로 다시 뛴다=역대 정권은 늘 재벌 개혁을 외쳐왔다.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이후 역대 정부는 재벌을 개혁하고 대기업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점에 표방점을 둬왔다. 다분히 정치권력의 표를 의식한 행동이었지만, 시대적 요구가 반영됐던 것이 사실이다. 경제단체의 정경 유착 근절이라는 숙제가 대두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제 경제단체는 스스로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과거의 얼룩이 있다면 지우겠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가치는 단체가 새롭게 준비하는 대표적인 것이다. 상생과 동반 성장, 사회와의 소통으로 새 시대로 달리겠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 발전의 파트너로, 잘못된 정책에 대한 저격수로서 위상을 다잡아야 할 때”라고 했다.
박수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