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나아트센터 내달 1일부터‘ 윈드 스케이프’展

제주 바람이 만들어낸 풍광속 이야기 오름·바다·식물 세 연작시리즈로 담아

동양의 수묵화 연상케한 촬영기법 파리·취리히·베를린 등 유럽서도 호평

“바람 부는 자연이 내겐 더 아름다워 소나무 선호 국내 팬 반응 너무 궁금”

사진작가 배병우(63·작은 사진). 그가 유명해진 건 소나무 사진 때문이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하늘로 쭉 뻗은 흑백사진을 팝가수 엘튼 존이 2005년 ‘런던 포토’에서 2820만원에 구입하면서부터 유명해졌다. 이후 그의 살림살이는 ‘확’ 피었다. 마치 붓으로 그린 수묵화를 보는 듯한 그의 서정적인 소나무 사진은 외국 미술계에서 먼저 인정했다. ‘포토 페인터’라는 닉네임이 따라붙은 것도 그때부터다.

2009년 한미정상회담 때 이명박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도 그의 소나무 사진이 실린 사진집이며, 이듬해 찰츠부르크페스티벌 포스터에도 그의 소나무사진 이미지가 실린 바 있다.

1983년 처음 소나무 사진을 찍을 때는 전국을 1년에 10만㎞ 이상씩 누볐다. 그러다 천년고도 경주의 소나무가 ‘답’임을 깨닫고, 왕릉 앞에서 날밤 새워가며 촬영했다. 왕릉의 소나무는 사자(死者)의 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걸 도와주는 나무이기에 더욱 각별했다. 그렇게 그는 30년간 소나무 사진을 찍어왔다. 요즘도 국내에선 소나무 사진이 단연 인기다. 풍부한 흑백톤으로 텅빔과 꽉참, 머무름과 나아감을 신비롭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병우는 소나무보다 바다를 먼저 찍었다. 전남 여수에서 나고 자란 그의 눈은 늘 바다로 향해 있었고, 카메라를 들고 다닌 뒤로는 당연히 바다를 찍게 됐다. 대학시절부터 전국의 바다와 섬을 찾아다닌 그는 ‘제주야말로 결정판’임을 알게 됐다. 이후로 지금까지 수십년째 제주도의 다양한 모습을 작품에 담고 있다.

그는 “나의 예술적 영감은 사실 바다에서 왔다. 특히 작품 속 강렬하면서도 포근한 이미지는 물결치는 파도에서 왔다”며 “정지된 시간의 영원한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도 바다만한 게 없다”고 했다.

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제주바다와 제주의 바람을 찍은 사진으로 작품전을 연다. 10월 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윈드 스케이프(Windscape)’라는 타이틀 아래 일련의 제주시리즈를 선보인다.

배병우의 제주사진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진다. 한라산 주변의 기생화산이 만들어낸 부드러운 굴곡을 미니멀하게 표현한 ‘오름시리즈’와 제주의 사면을 둘러싼 바다를 산수화처럼 표현한 ‘바다시리즈’, 바람결에 흔들리는 풀을 포착한 ‘식물시리즈’가 그 것. 세 시리즈의 공통점은 ‘바람’이다. 바람이 만들어내는 제주 풍경을 담은 것. ‘윈드 스케이프(Windscape)’란 제목도 그래서 나왔다.

“제가 열이 좀 많은 편이라 그런지 어릴 때부터 바람을 좋아했어요. 사라호 태풍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집들이 송두리째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무시무시했죠. 그 와중에 저 혼자 신나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정지된 자연보다, 바람에 흔들리는 자연이 제겐 더 아름다워요. 바람 부는 한순간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제 작업이기도 하고요.”

배병우(사진작가/예술인)
사진작가 배병우(63·작은 사진). 그가 유명해진 건 소나무 사진 때문이다.
배병우(사진작가/예술인) 사진작가 배병우(63·작은 사진). 그가 유명해진 건 소나무 사진 때문이다.

제주 풍광을 담은 그의 ‘윈드 스케이프’ 연작은 파리ㆍ취리히ㆍ베를린 등 유럽에서 먼저 소개돼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독일 예술서적 전문출판사 하체칸츠는 동명의 사진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배병우는 “해외서 선보였던 제주 연작에 국내팬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하다. 벨기에의 한 관계자는 ‘소나무 사진보다 여성적인 제주 오름 사진이 더 근사하고 매혹적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마치 하얀 화선지에 먹이 번져가듯 백(白)에서부터 흑(黑)까지 수백, 수천의 단색톤이 오묘하게 표현돼 붓자국으로 심상을 표현한 것 같은 그의 사진에선 안개가 만져질 듯하고, 바람소리가 들릴 듯하다. 동양의 수묵을 연상케 하는 사진의 비결은 아날로그 필름을 고집해온 작업방식에서 비롯된다. 디지털이 아닌 아나로그 방식으로 작업하는 이유를 묻자 ‘디지털 사진의 쨍한 느낌이 싫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머잖아 아나로그용 필름과 인화지가 사라질 것이기에 그는 더욱 가열차게 세계를 누비고 있다.

“11월이면 일본의 유명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아사바 가쓰미와 협업한 사진집이 발간되고, 내년 여름부터는 프랑스 샹보르성에서 1년간 작업할 예정입니다. 엄청난 무게의 구식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작업해야 하니 ‘체력’이 자산이에요. 좋아하는 술을 줄일 수는 없고, 운동(탁구)을 미친듯 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해외 주요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어야지요. 또 후배에게 글로벌 무대로 진입하는 브리지(다리)가 되는 게 소망입니다”.

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