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800명 무급휴직 부담 고통분담·건강악화도 원인

윤석금·강덕수 회장 이어 또한명의 ‘샐러리맨 신화’꺼져

“사람 목숨만큼 중요한 것이 기업 목숨이다.”

지난해 5월 베가레이서2 공개 행사장에 박병엽<사진> 팬택 부회장이 2년 만에 직접 발표자로 나섰다. 당시 “건강 괜찮으시냐”는 기자의 안부인사에 그는 “지금 내 몸 돌볼 때 아니다. 내 건강보다는 우리 제품에 더 관심 가져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은 회사 목숨 지키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고 팬택에 대한 무한 사랑을 드러냈다.

올 초 주주총회에서도 “목숨 걸고 투자금 유치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그는 삼성전자로부터 530억원, 은행권으로부터 1565억원(상환분을 빼면 825억원)을 끌어들이는 등 실천하는 대표이사의 면모도 보여줬다.

박병엽 팬택 부회장이 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팬택 본사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사의 표명을 밝히고 있다.<br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m.com 2011.12.06
박병엽 팬택 부회장이 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팬택 본사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사의 표명을 밝히고 있다.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m.com 2011.12.06

박 부회장은 사실상 팬택과 동일체다. 그가 팬택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다. 1991년 팬택 설립 이후 22년 만이다. 심혈관에 스텐트 삽입 수술을 받고 근육 통증에다 최근 갑상선 질환까지 겹치는 등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탓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박 부회장은 자신의 건강보다 기업의 생존을 위해 용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3분기부터 4분기 연속 적자를 내며 올해 2분기도 49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 전분기보다 적자 규모가 6배 이상 늘어났다.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고육책으로 전체 직원의 3분의 1가량인 800명을 대상으로 6개월간 무급휴직을 실시하기로 했다. 같은 식구를 장기간 급여 없이 쉬게 하는 수장으로서 본인의 자리를 꿰차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던 셈이다. 박 부회장은 직원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모두에게 깊은 상처와 아픔만을 드린 것 같습니다. 깊은 자괴와 책임감을 느낍니다. 번거롭지 않게 조용히 떠나고자 합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일각에서는 2011년 돌연 사의를 표명하고 복귀했던 모습의 재판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승부사’라는 별명답게 이번에도 승부를 걸었다는 것. 하지만 두 사의 표명 간에는 분명 온도차가 있다. 그 당시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사의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리며 채권단을 압박하는 전략적 카드 측면이 강했다. 이번에는 ‘조용히 떠나겠다’는 그의 말처럼 속죄의 사의 표명인 셈이다. 이로써 윤석금 웅진 회장, 강덕수 STX 회장에 이어 또 한 명의 전설적인 자수성가 총수가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됐다.

박 부회장이 높이 평가받았던 점은 휴대폰 골리앗과 제품 자체만 놓고 봤을 때 대등한 경쟁을 펼쳤기 때문. 실제 국내 휴대전화 트렌드가 바뀌는 과정에서 팬택은 굵직한 ‘최초’ 타이틀을 기록해왔다. 2001년 국내 최초 사진 전송 폴더폰 IM-3100, 2004년 세계 최초 지문인식폰 GI100, 2010년 국내 최초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지난해 국내 최초 1300만화소 카메라 탑재폰 베가 S5, 국내 최초 6인치급 풀HD폰 베가 넘버6 등이다.

팬택 직원들은 박 부회장을 ‘보스’라고 불러왔다.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조직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보스의 부재 속에 팬택은 다음달 5.5인치의 펜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해 갤럭시 노트3, LG 뷰3 등과 맞붙어야 한다. 대대적인 제품 발표회도 준비 중이다.

“그분은 손에서 경영권만 놓았을 뿐이지 앞으로도 우리의 정신적 지주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이 담담하게 칼날을 갈고 있는 팬택 한 관계자의 말이다.

한편 팬택은 25일 이준우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정태일 기자/


정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