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요즘 길가에 아까시나무처럼 생겼는데 흰꽃이 한창인 나무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회화나무다.
명색이 식물학자 친구가 회화나무도 모르냐고 핀잔을 주고 싶었는데, 그래도 나무 이름을 궁금해하다니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귀한 나무였는데 이제는 제법 여러 곳에 가로수, 혹은 공원수로 심어져 있다. 잔잔한 꽃이 모여 큰 꽃송이를 만들고 다시 나무 전체에 달려 거리를 환하게 하지만, 그 꽃빛이 유백색에 녹색을 아주 조금 섞은 듯한 은은한 빛깔이어서 밝아도 기품있는 나무가 된다. 비라도 한바탕 쏟아붓고 나면 길가에 가득 떨어진 녹백색 고운 꽃잎의 애잔한 풍취라니!
중국에서는 회화나무를 학자수, 출세수, 행복수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이 나무를 심으면 집안에 학자가 나거나 큰 인물이 나오며, 집안에 행복을 부른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이란다.
옛 중국에서는 회화나무에는 진실을 가려주는 힘이 있다고 하여 재판관이 송사를 들을 때 반드시 회화나무 가지를 들고 재판에 임했다고 하는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그래서 우리의 선조도 이 나무를 최고의 나무로 여겼으며, 이 나무를 심을 때는 집안이 번성하고 바른 인품의 큰 인물이 나고자 하는 마음을 가득 담았으리라.
생각해보면 진정으로 성공해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그건 과욕과 남을 밟고 일어서는 경쟁이 아니라, 회화나무를 심어 보고 또 보며, 온 마음을 다해 바라고 간절히 원하며,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저절로 행동과 처신도 그에 걸맞게 나오게 되고, 그렇게 연결된 삶은 분명 아름답고 충만하게 채워지리라.
이제 회화나무가 특별한 사람들이 특별한 곳에 심는 나무가 아닌, 주변에서 가깝게 만날 수 있게 된 덕분인지 많은 이가 물질적인 삶은 윤택해졌다지만 정신은 황폐하여 사회를 이끌어갈 지도층은 존경 대신 손가락질을 받고 있으며 그 끝은 불행이다. 이 시대엔 정말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존경하는 인물을 찾기 어려운 것일까 안타깝기도 하다.
회화나무는 지천이지만 그 옛날 이 나무를 심으면서 가졌던 맑고 간절한 마음이 담기지 않은 탓은 아닐까!
이 마지막 여름의 끝자락에서 회화나무를 보는 마음이라고 바꾸어보면 어떨까 싶다.
기도하듯, 수도하듯 화화나무를 볼 때마다 품었던 욕심은 하나씩 비워내고 또 비워내며, 집착의 고리도 하나씩 끊어가다 보면 어느 결에 회화나무는 진정한 행복수가 되어 우리 삶 속에서 커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바라보는 회화나무는 녹백색 꽃빛이 참으로 상서롭고 평화롭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