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조선해양 대표 · 이사회 의장직 결국 물러나… “패자부활전 기회도 안 준 채권단, 무리수 뒀다” 시각도

찢어지도록 가난한 소년이 있었다. 한국전쟁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남의 집 더부살이로 함께 들어갔다. 부잣집 주인 양반은 어느 날 소년을 불렀다. “너는 어떤 누구보다도 성실하다. 앞으로 먹고살려면 상고에 가도록 하렴.” 소년은 그 양반의 도움으로 동대문상고를 졸업했다. 소년은 쌍용에 입사했고, 거기에서 대학도 다녔다. 나중에 그는 거대 조선소를 세웠다. 어머니는 아들이 배를 수주할 때마다 큰 시루떡을 직접 지어 돌렸다.

가슴 뭉클한 사연을 지닌 소년, 훗날의 강덕수 STX그룹 회장이다. 가난 극복의 신화, 고졸 신화, 나아가 샐러리맨 신화를 일군 강 회장의 옛 스토리다.

그런 강 회장이 좌초했다. 강 회장은 주력 계열사인 STX조선해양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2001년 STX그룹을 출범시킨 지 12년 만으로, 샐러리맨의 신화도 동시에 무너진 것이다.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경영 위기를 맞은 책임을 지고 그는 모든 경영권을 내려놓았다. 채권단에서 향후 강 회장에게 일정 롤(Role)을 줄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오기는 하지만, 옛날의 강 회장 특유의 강단을 다시 볼 수 있을 확률은 희박해 보인다.

강덕수(기업인/STX그룹회장)
찢어지도록 가난한 소년이 있었다. 한국전쟁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남의 집 더부살이로 함께 들어갔다. 부잣집 주인 양반은 어느 날 소년을 불렀다. “너는 어떤 누구보다도 성실하다. 앞으로 먹고살려면 상고에 가도록 하렴.” 소년은 그 양반의 도움으로 동대문상고를 졸업했다.
강덕수(기업인/STX그룹회장) 찢어지도록 가난한 소년이 있었다. 한국전쟁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남의 집 더부살이로 함께 들어갔다. 부잣집 주인 양반은 어느 날 소년을 불렀다. “너는 어떤 누구보다도 성실하다. 앞으로 먹고살려면 상고에 가도록 하렴.” 소년은 그 양반의 도움으로 동대문상고를 졸업했다.

이에 “글로벌 조선소를 지어본 이는 한국에선 정주영 고(故) 현대 명예회장과 강 회장밖에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강 회장에게 패자부활전 기회도 주지 않은 채권단에 “무리수를 뒀다”는 시각이 뒤따르기도 한다. STX 경영정상화와 관련해서 채권단의 판단이 현명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중요한 것은 강 회장의 ‘샐러리맨의 신화’, 그 내용까지 함께 사장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돈도 없고, 학벌도 없고, 인맥도 없던 강 회장이 STX그룹을 세워 한때 포효한 것은 남다른 집념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펙(Spec)이 아니라 스토리(Story)로 조선 신화를 세웠고, 이 시대 샐러리맨들에게 무한한 꿈과 희망을 줬다. 강덕수 개인은 현재로선 무너졌지만, 그가 세운 정열의 삶은 평범한 샐러리맨들에겐 여전히 ‘멘토’로서 살아 있다.

경영권을 다 내려놓은 강 회장의 향후 운신 방향은 가늠키 어렵다. 현재로선 허탈감만이 지배할 것이다. CEO의 경영 실패엔 반드시 책임이 뒤따라야 하는 게 사실이지만, 유독 강 회장의 퇴진은 이런저런 교훈과 함께 많은 이들을 착잡하게 만든다. 그래도 ‘제2 샐러리맨 신화’는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면서 말이다.

김영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