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한지숙 기자] 넥타이를 맨 한 남자가 컨베이어벨트 위를 달린다. 그의 표정은 자못 심각하다. 그 사이로 다른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가고, 의자가 지나가고, 바람이 세게 불자 남성은 더 빨리 달린다. 그리고 ‘탕!’하는 한 발의 총소리. 남자는 쓰러지고 남자의 셔츠에는 피가 얼룩져 있다. 그래도 남자는 셔츠를 갈아입고, 전력을 다해 뛰고 또 뛴다.

지친 남자가 이번엔 침대에 누워있다. 옆 벽에는 와이어를 허리에 찬 여성 2명이 벽을 걷고 구르기도 한다.

남자는 스트레스에 상처투성이지만 매일 일상을 반복해야 하는 현대 도시인을, 벽에서 노는 자유로운 여성은 잊고 지낸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5일 오후 베이징의 공티노스로드에 위치한 아시아 호텔 인근에 가설로 세워진 대형 천막 안은 캄캄하고, 클럽 댄스음악 같은 디제잉이 이어졌다.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남자가 박스와 충돌해 나오자, 500~600명 관객은 환호성을 질렀다.

넌버벌 퍼포먼스 ‘푸에르자 부르타’ 오리지널 팀은 말없이 은유, 상징, 몸짓과 에너지만으로 베이징 시민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달아오르게 했다.

40㎡ 크기의 천막 안에는 딱히 객석도 무대도 없다. 입장객은 70분 동안 내내 서서 봐야 한다. 무대도 중앙 또는 좌우 코너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배우가 플로어에 내려와 관객과 춤추고, 안에는 종이가루가 담긴 스티로폼 조각으로 관객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치며 한판 놀이를 벌인다. 공연장 안에는 객석 위로 물이 비오듯 뿌려지고, 세찬 바람도 분다. 그래도 누구도 기분나빠 하지 않고 빗속에서 맘껏 뛰놀 듯 소리지르며 논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천장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투명한 아크릴 소재로 만든 대형 수조였다. 남미 민속음악이 테크노비트와 섞여 흘러나오면 수조 속 여성이 몽환적으로 유영한다. 11m의 이 수조는 관객의 바로 머리 위까지 내려온다. 사람들은 손을 뻗어 아크릴 너머로 배우의 몸을 만졌다. 이렇게 몸을 만지면 엄마 몸 속 태아, 모태의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푸에르자 부르타’는 영어로 ‘잔혹한 힘(Brutal force)’란 뜻이다. 하지만 깃털같은 종이가루를 뿌리는 박스를 서로 뒤엉켜 내리치며 노는 모습은 아무렇게나 뛰놀아도 좋았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해 뭉클해지고, 수조 퍼포먼스는 지친 객석을 달래는 부드러운 힘이다. 공연은 팔딱팔딱 뛰는 육체의 향연, 관객과 배우 모두 다같이 에너지를 분출하고 해방하려는시도였다.

여자친구와 왔다는 윌리엄 류(28)는 “너무 환상적이고 놀랍다. 이런 공연은 처음이다. 전체 인터랙티브한 쇼가 다 마음에 들었다”고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자오왕(26)은 “친구들과 놀러왔는데 환상적이어서 나도 무대에 올라가서 춤추고 놀았다”고 말했다.

2002년 한국서도 공연한 ‘델라구아다’의 아르헨티나 출신 감독 디키 제임스 제작이다. 필리핀ㆍ대만ㆍ싱가포르 등에서도 공연했으며, 한국에서의 첫 내한공연은 다음달 1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FB빅탑시어터에서 펼쳐진다. 1566-1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