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신동윤 기자] “대기업의 기침 한 번에 1차 협력업체는 몸살하고 2~3차 협력업체는 다 죽습니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계속된 파업으로 협력업체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생산량 감소에 따른 피해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근로자들은 언제 끝날지 모를 완성차 업체의 파업에 무급 연차 등을 써가며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다. 급기야 협력업체들은 “파업 장기화로 공장 운영 자체를 위협을 받고 있다”며 꾹 참아왔던 불만을 쏟아냈다.
지난달 29일 찾아간 경북 경주시 소재 현대차 협력업체 광진상공. 에쿠스와 제네시스, 베라크루즈에 사용되는 ‘도어 윈도 레귤레이터’를 생산하고 있는 이 공장은 전체 생산량의 50% 이상을 현대차 울산공장에 납품 중이었다.
하지만 제1공장에 위치한 에쿠스와 제네시스 부품 생산설비는 완전히 불이 꺼진 채 멈춰서 있었다. 그나마 가동 중인 베라크루즈 라인에는 6명이 일해야 할 자리에 1명만 근무하고 있었다. GM 미국공장과 폴크스바겐에 납품할 레귤레이터를 만들기 위해 쉴 새 없이 바쁘게 일하는 옆 라인 근로자의 모습과는 크게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광진상공 관계자는 “생산량이 평소의 60%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손 놓고 있을 수 없어 소량이나마 생산 중이지만 완성해도 그대로 쌓아둬야 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걱정부터 앞선다”고 말했다. 실제 제1공장 입구에는 재고품을 넣어둔 상자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공장 내부에서도 통로 양쪽으로도 죽 늘어서서 쌓인 재고품들로 공간을 찾기 힘들었다. 예전 같으면 제품을 나르기 위해 분주하게 오가던 트럭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나마 한참 만에 들어온 트럭도 전체 칸의 1/4을 채우지 않고 공장을 떠났다.
근로자들의 사기도 크게 저하된 모습이었다. 한 근로자는 “만들어도 결국 재고가 돼 공장에 쌓이는데 신이 나겠느냐”며 “더 많은 동료와 함께 일해야 하는데 혼자만 나와 있으니 기운이 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완성차 업체의 파업으로 월급봉투 역시 한층 얇아졌다. 평소 8시간의 정식 근무 이외에도 2.5시간의 잔업, 월 1.5회의 주말 특근 등으로 추가 수당을 받아 왔지만 생산 축소로 잔업이 없어지면서 소득이 줄어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극한 대립 중인 현대차와는 달리 광진상공은 노사가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서 노력 중이라는 점이다. 노조 측에서는 급여를 포기해가면서까지 남는 인력들이 자진해 무급 연차를 쓰고 있었다. 바로 사측의 임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주진식 노조위원장은 “자녀를 위한 지출이 많은 연령대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들은 회사부터 살리겠다며 희생 중”이라며 “협력업체의 이런 사정을 아는지 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는 “근로자 권익을 위한 노조 활동은 분명 필요하지만 지금 같이 기득권 지키기에 매몰된 투쟁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광진상공에 따르면 올해 현대차 노조의 부분파업으로 인해 발생한 손실은 지금까지 약 12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있었던 파업 때도 피해액이 총 75억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바로 매년 잇따르는 파업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는 것. 회사 측은 올해 생산 감소치가 현대차 파업으로 인해 당초에 예상한 3%보다 더 높은 5%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정기범 광진상공 대표는 “평소에도 협력업체의 근로자보다 2~3배나 많은 임금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욕심을 더 채우겠다고 협력업체의 희생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것에 너무 화가 난다”며 “파업이 장기화한다면 소규모의 협력업체들은 줄도산하는 등 큰 곤경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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