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 재계-노동계 입장은

적게 일하는데 똑같이 받아서야… 재계, 임금 삭감은 당연한 수순 中企 인건비·인력난 이중고 늪에

8시간 일해도 먹고살 수 있어야… 노동계, 시행도 하기전에 겁먹나 생산성 향상 된 좋은 사례 많아

양보 없이는 노사 충돌 불가피 탄력근로제등 개선방안 찾아야

경영계와 노동계가 ‘근로시간 단축’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충돌 지점은 ‘임금 감축 없는 노동시간 단축 추진’과 ‘임금 감축 연계 없는 노동시간 단축 불가’다.

노동계는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임금이 저하될 것을 걱정해 임금 감축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경영자들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당연히 임금을 깎아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 저하, 생산성 유지가 평행선을 긋는 모습이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지난 9월 한 토론회에서 “근로시간이 단축된 만큼 임금 저하를 막고, 생산성도 함께 유지될 수 있는 선순환의 노동경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게 일하고 똑같은 임금을 받고 싶다고?=경영계의 입장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적게 일하면서 어떻게 현재와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냐고 반문한다. 근로시간이 단축됐으니 당연히 임금 수준을 낮춰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근로시간 단축 입법 추진 소식이 알려지자 “경영계는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등 인위적 근로시간 단축은 우리 기업과 국가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경직적 노동시장과 낮은 노동 생산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우리 기업들에게 초과근로는 경기 변동에 대응하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인데 이러한 마지막 유연성까지 제한하는 것은 기업에게 상당한 부담을 초래할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지불능력이 부족하고 만성적인 인력난에 직면한 중소기업은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고 인력난이 심화되는 이중고에 시달릴 것이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근로자들은 휴일근로 등 초과근로 감소로 인한 소득 저하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 이로 인한 개별기업의 노사갈등이 확대될 것이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개별 사업장에서 어떤 묘안을 내놓을지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

일단 개별 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줄어든 시간만큼 근로자들의 임금 수준을 낮추겠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사용자들은 2013년 10월 25일 현재는 주당 68시간 일하는데 맞춰 임금을 줬는데 향후 주당 16시간씩 줄여 52시간을 일할 경우 어떻게 현재와 똑같거나 그 이상의 임금 수준을 보장해 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근로시간을 단축한 뒤 부족한 시간만큼 추가 인력을 채용했을 때 생산성의 향상으로 더 많은 매출과 이익을 올린 여러 바람직한 근로시간 단축 사례들도 있어 참고할 만하다.

겁부터 먹고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 삭감안을 패키지로 묶어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게 노동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하루 8시간 일하고 먹고살 수 있어야 좋은 나라 아니냐=선진국에서는 하루 8시간을 일하고도 최소한 먹고살 수는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루 8시간을 일해도 빠듯하다. 그래서 주말에, 야간에 추가 노동을 한다. 노동단체들은 이런 현실에 주목한다.

김은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책국장은 “일부 근로자들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임금이 삭감되는 것을 걱정하는 경우도 있다”며 “그러나 8시간만 일해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국가가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무엇보다 근로시간 단축을 놓고 임금이나 생산성 등을 경영계에서 먼저 말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라고 김 국장은 일갈한다. 김 국장은 “일단 근로시간 단축을 한 뒤 노사가 협상으로 임금 부분을 풀어나갈 수 있는데 정책이 시행되기도 전에 임금이나 생산성 등을 논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근로시간 단축은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의 일환으로 봐야 하는 측면이 있어 임금문제나 생산성 등을 논하는 것은 너무 앞서 가는 부분이 있다는 것.

게다가 임금은 많이 받고, 근로시간은 적은 대기업의 문제라기보다 임금은 적으면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근로시간 단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근로 현장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있다. 중소기업에서 근무를 하려는 근로자들이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근로시간만 단축하면 대체 일은 누가 하느냐는 것이다. 경기도 포천에서 섬유염색업을 하는 중소기업체 사장은 “아무리 채용공고를 해도 여기까지 와 일할 사람이 없어 겨우 잔업과 휴일, 연장근무로 주문량을 맞춰 왔는데 이제 새로 뽑을 사람도 없어 주문량을 맞추는 게 어렵게 됐다”고 하소연 했다.

▶작업강도, 생산성은 높여야 한다는데=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도 기존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작업강도나 노동 생산성은 기존보다 높아져야 한다. 당연히 잠시 쉬면서 커피 한 잔 마시거나 동료들끼리 잡담을 할 수도 없다. 정해진 근로시간에는 무조건 작업을 해야 한다.

여기에 이미 선진국 등에 많이 도입돼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도가 확대 시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도’도 근로시간 단축에 대안일 수 있다. 근로자가 초과근로를 했다 하더라도 나중에 휴식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만드는 것.

근로시간 단축을 컨설팅해 주는 한 공인노무사는 “노사의 입장 차가 상당히 크다”며 “사용자와 노동자가 서로 각자의 주장만 할 경우 자칫 노사 분규로 파국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서로 한 발씩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연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