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수가 웃었다. 한없이 다정했던 아버지. 소를 닮은 착한 눈빛에 걸린 웃음이 왠지 서늘하다. 영화 ‘공범’(감독 국동석)을 말하라면, 감히 이 한 장면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공소시효를 며칠 안 남긴 15년전 아동납치살해사건. 미제사건을 극화한 영화를 본 딸(손예진 분)이 작품 속에 삽입된 당시 범인 목소리를 듣고 아버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무한한 사랑을 나눠주던 아빠가 아동 살해범이라니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의심은 파문처럼 걷잡을 수 없고, 마침내 딸과 아버지의 심장을 움켜쥔다. 잔인하기조차 한 의심으로 가득한 딸의 눈빛을 묵묵히 받아내던 아버지가 결국은 웃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웃음일까, 살인자의 웃음일까. 배우 김갑수의 얼굴 안에서 명암과 희비극이 교차하고, 관객들은 ‘오리무중’의 혼돈에 빠진다. 영화를 제작한 박진표 감독(‘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은 “손예진이 짐승같은 본능의 배우라면 김갑수는 허허실실하다가 카메라가 돌면 사냥꾼으로 돌변하는 배우”라고 했다. “원 샷 원 킬의 사냥꾼” 말이다.

‘공범’은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의 소재로 빈번하게 스크린에 담겨져왔던 흉악범죄(아동납치살해사건)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그놈 목소리’나 ‘살인의 추억’ 처럼 해결되지 않은, 미제사건을 택했다. 그리고 ‘공범’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잡히지 않은 범인이 내 곁을 지켜주었던 가족이라면?’이라는 질문으로부터 드라마를 출발시킨다. “영화의 소재가 된 바로 그 사건의 범인이 살아 남아 객석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을 밀어붙여 “내 사랑하는 가족이 바로 범인일 수 있다”는 설정까지 이른 것이다. 새로운 발상이다. 그렇게 ‘공범’은 미제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부녀간에 파고든 의심과 의혹의 드라마로 전개돼간다. 의심하는 자와 의심받는 자를 가족의 테두리로 묶어두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심리를 사건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포갠다.

영화는 주인공인 두 부녀, ‘다은’(손예진 분)과 ‘순만’(김갑수 분)의 과거 다정스러웠던 한 때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딸이 어린 소녀였던 당시, 비오는 날 딸을 데리러 간 다정한 아빠. ‘엄마’ 없이 세상 단 둘 뿐인 부녀는 가난하지만 행복하기만 했다. 아빠가 불러주고, 딸은 받아쓰며 공부를 하는 장면. 이 첫 대목은 영화 후반부의 중요한 복선이 된다.

어느덧 다은은 훌쩍 커서 기자지망생으로 취업을 준비 중이다. 다은은 언론사의 면접 준비 겸 친구와 함께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를 한 편 관람한다. 15년전 사회를 충격에 빠뜨리고 미제사건으로 남은 아동유괴살인 사건을 극화한 작품이다. 사건의 공소시효가 며칠 남지 않은 상황.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엔 사건 당시 실제 범인의 전화 통화 목소리가 담겼다. 이를 들은 다은은 충격에 빠져 객석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아빠의 어투와 목소리를 여지없이 닮아있던 것이다.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만 간다. 다은은 아빠의 과거 뒷조사에 나서는 한편, 사건의 내막을 취재하며 진실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 때마침 정체 모를 사내가 부녀의 주변을 멤돌기 시작하고, 아빠의 석연치 않은 반응도 이어진다. 과연, 아빠는 진짜 범인일까? 그렇다면, 사건 공소시효를 며칠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딸은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가?

‘세상의 모든 범죄자는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발상으로부터 시작한 극의 아이디어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기자지망생인 딸과 한없이 자애로운 아버지의 사이를 파고든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의심’은 극의 강력한 추동력이 되기에 충분하다. 정체모를 사내와 엄마의 비밀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점차 고조되가는 영화와 관객과의 수싸움도 적잖이 재미를 준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영화는 종종 의도를 조급하게 노출시키거나 방향을 섣부르게 틀어가면서 흔들리곤 한다. 그 결과 의심하는 딸과 의심받는 아버지, 두 부녀가 처한 ‘도덕적 딜레마’가 관객을 설득하는 데는 다소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김갑수의 존재감과 손예진의 집중력이 극이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잡아간다. 그 결과, 영화는 때로 거칠고 투박하지만 패기 있게 밀어붙이는 젊은 감독의 야심과 미묘한 뉘앙스까지 극의 분위기를 장악하는 김갑수의 깊이와 관록, 마지막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인물의 감정에 천착한 손예진의 호연이 ‘공범’을 이루는 작품이 됐다.

이형석 기자 suk@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bobt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