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갤러리 내달 24일까지 윤석남 展
훼손된 자연의 영혼을 달래는 ‘그린룸’ 죽음후 빛이 되길 갈구하는 ‘화이트룸’ 너와 40장에 여인네 담은 ‘너와…’ 등 생명의 화합·치유·공존의 메시지 환기
윤석남(74)은 한국 여성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지난 1993년 ‘어머니의 눈’, 1996년 ‘핑크룸’ 등 그가 선보인 일련의 작품은 이 땅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팍팍한 삶을 올곧게 드러낸 작업이었다.
이후로도 그는 어머니의 모성, 현대여성의 불안한 내면을 포착하며 억눌린 여성들을 복권시켰다. 낡은 빨래판에 그려진 어머니의 초상, 여성용을 상징하는 핑크빛 의자에 뾰족하게 솟은 대못 등은 주체적 존재임에도 존엄성을 짓밟힌 채 살아가는 여성의 실존을 표현한 의미 있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후 윤석남은 버려진 반려견 1025마리를 나무판에 깎고 그린 ‘1025:사람과 사람없이’(2008)를 선보이며 여성 이야기를 생명 이야기로 확장시켰고, 일흔을 넘어서며 투쟁적 작업에서 화합과 치유의 작업으로 선회하고 있다.
윤석남이 서울 소격동의 학고재갤러리에서 오는 11월 24일까지 개인전을 연다. 전시부제는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 독특한 부제에 대해 작가는 “사람들은 미지의 것이 나타나면 즉각적으로 이름을 붙이고 이를 재단한다. 그것은 오만이다. 소나무는 정작 자신이 소나무라는 사실을 모를뿐더러, 일방적으로 명명되는 걸 원치 않을 수 있다. 나 자신 여성주의 미술가로 규정되는 걸 원치 않듯 말이다”고 설명한다.
윤석남은 이번에 인간의 편의를 위해 모든 사물에 이름이 붙여짐으로써 그 의미가 일방적으로 규정되고 분류되는 현실을 꿰뚫은 작업을 내놓았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임을 자임하며 자연을 정복하고 문명을 발전시켰다고 믿지만 이는 지극히 이기적 사고일 뿐,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킨 작업이다.
전시는 세 파트로 구성됐다. 과거 선보였던 ‘방(房)’시리즈의 연작인 ‘그린 룸’과 ‘화이트 룸’ 그리고 ‘너와 작업’이다. 녹색 한지로 방 전체를 꾸민 ‘그린 룸’은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의 행동을 환기시키며, 자연 속 동식물의 영혼을 달래고 있는 작품이다.
윤석남은 나비, 학, 부엉이, 꽃, 나무, 물결 등 자연의 형상을 가로 세로 30cm의 사각 한지에 오려 벽에 무수히 붙였고, 바닥엔 녹색의 구슬을 깔았다. 또 연꽃이 그려진 테이블과 의자를 곁들였다. 연꽃은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며, 자연 회복을 소망하는 작가의 염원도 은유한다.
갤러리 초입에 꾸며진 ‘화이트 룸-어머니의 뜰’은 ‘어머니’에게 바치는 만가(輓歌)이자, 인간이란 존재가 죽음 이후 ‘빛’이 되리라는 긍정의 시선을 드러낸 작업이다.
아울러 기와를 구하기 힘들었던 강원도 화전민들이 나무판자로 기와를 대신했던 ‘너와’에 모필로 인물을 그려넣은 ‘너와’ 연작도 출품됐다.
용도폐기된 너와의 나뭇결과 옹이를 그대로 살려가며 그 위에 최소한의 붓질로 여인네를 그려넣은 40여점의 작품은 그 질박한 진솔함이 보는 이의 마음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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