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통합진보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대리투표를 한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들은 대리투표를 해서 통진당의 경선 관리 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로 재판에 넘겨졌는데요, 이상하게도 업무방해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통진당 측은 무죄 소식에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검찰이 대리투표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한 이유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내 경선은 공직선거법이 규율하고 있는 ‘공직선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문제가 있어 보이는 ‘통진당 부정경선’이라는 사태를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검찰은 판단해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한 것입니다. 정작 업무방해의 피해자인 통진당 측은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하는데도 말이죠. (업무방해는 친고죄가 아니어서 피해자가 고소를 하느냐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주로 노동사건에서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막기 위한 도구로 사용됐고, 이러한 문제가 제기돼 지난해에는 업무방해를 친고죄에 포함시키자는 형법 개정안이 제출되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대리투표한 이들에게 공직선거법을 적용할수는 없었지만, 당내 경선에 공직선거법 상의 4대 원칙(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투표)이 적용돼야 한다고 법정에서 주장했습니다. ‘직접투표’가 아닌 ‘대리투표’를 한 것은 공정한 경선을 치르고자 하는 통합진보당의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재판부는 당내 경선에 공직선거법 상 4대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근거로 ‘정당의 자율성’을 들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당내 경선 문제는 자신들이 판단할 사안이 아니라고 법원에 답했고,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도 같은 취지로 판단한 바 있습니다. 실제 우리나라 각 정당들의 공직선거 후보자 추천 방식은 굉장히 다양하고, 공직선거법이 적용되기 힘든 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판결문을 인용하자면 “실제로 우리나라 정당들의 경우 당내 특정 실력자나 소수 지도부의 의사에 따라 후보자를 결정하거나, 당내경선을 실시한 경우에도 선출된 후보자가 선거에서 승산이 없거나 적절치 않다고 판단될 경우 경선결과를 무시한 채 다른 사람을 후보자로 결정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최근 논란을 일으켰던 새누리당의 서청원 전 대표 공천도 그런 사례입니다.

당원들의 투표를 통한 후보자 공천이라는 통진당의 방식은, 그간 ‘실세의 낙점’에 의한 방식이나 정당 정체성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투표 방식에 비하면 진일보한 것이었다고 평가할만합니다. 아래로부터 조직된 정당이라는 점이 이러한 시도를 가능하게 했죠.

하지만 설익은 실험이었습니다. 통진당은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전자투표 방식이 대리투표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막기 위해 공인인증서를 통한 본인인증 방식 등을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상에서 완전한 본인인증은 불가능하다는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포기했죠. 보다 많은 당원의 참여를 끌어내야 된다는 목적도 있었고요. 당헌이나 당규에도 대리투표를 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을 두지 않았습니다. 애시당초 대리투표를 막을 의지, 즉 공정한 선거를 진행할 의지가 없었던 것이지요. ‘공정한 선거를 진행하려는 통진당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검찰 주장이 배척된 이유입니다.

재판부는 대리투표한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대리투표를 막을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은 통진당 당직자들에게 책임이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이정희 통진당 대표는 법원의 무죄 판결에 “부정비리 정당으로 낙인찍으려고 했던 시도가 허위였음이 밝혀졌다”고 환영했지만 이번 판결을 더욱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일반당원들은 법적으로 무죄를 받았지만, 궁극적인 책임은 공정한 경선 관리 책임을 방기한 통진당 측에 있다는 것이 판결의 취지입니다.

더불어 이번 판결은 조만간 있을 서울중앙지법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소신에 따른 판결을 했겠지만 재판부로서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이겠죠. 여느 국감이 그렇듯, 국회의원들은 피감기관 측의 얘기는 듣지 않은 채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만 쏟아낼 것입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국감장에서 이번 판결을 비판하기 전에 유념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과연 정치인들은 민주적인 후보자 공천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당들로서는 당헌ㆍ당규 등을 통해 당내경선에서의 투표원칙과 그 방법ㆍ절차 를 명확히 규정하고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최대한 갖추도록 함으로써, 정당의 자율성을 향유함과 동시에 공직선거 후보자 추천행위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는 재판부의 마지막 당부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정치인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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