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갑 아파트에 갇힌 사람들…옆집과도 담쌓은 ‘이웃不通’

한국인 60%의 보금자리 아파트 칙칙한 회색건물속 마음의 벽 쌓아 엘리베이터 함께 타도 층수만 볼뿐

“이웃과 다툰 경험 없다” 85% 싸움조차 없는 무관심한 현실

“옛날 시인들은 도산서원이라던가 완아초당에 몸담고 흐르는 시냇물에 몸 씻고 바람으로 담을 치고 밤이면 달빛과 별빛을 그릇에 한아름 담아놓고 벌레소리 들으며 시를 썼다/방안 가득 걸려 있는 속옷이나 보고 자동차의 소음이나 밤새도록 듣는 현대의 아파트 시인들은 무엇을 쓰나.”

시인 배인환은 자신의 시 ‘현대의 시인은 아파트에 살고’를 통해 아파트에 거주하는 시인의 역설적인 모습을 말했다.

자연을 벗삼고 소통해야 하는 시인이 단절을 상징하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소통의 단절은 비단 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전체 인구의 60%가 넘는 사람이 아파트에 사는 나라(2010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대한민국, 그곳에서 사람들은 회색건물 안에 갇혀 이웃과 단절된 채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 동네에 살면 먼 친척보다 가깝다던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추억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멀뚱히 다른 곳만 쳐다보는 이웃사촌들=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김모(35) 씨는 얼마 전 무안한 일을 겪었다. 출근길에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주민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한 채 무시를 당한 것. 김 씨는 “1층으로 가는 몇 초가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적은 처음”이라며 “출근하는 내내 인사를 건넨 것이 오지랖으로 보였을까 봐 신경이 쓰였다”고 말했다. 그후 김 씨는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함께 타도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층을 가리키는 숫자만 쳐다본다”고 말했다.

22일 헤럴드경제가 취업 포털사이트 인크루트를 통해 직장인 회원 600명을 대상으로 ‘위층과 아래층, 같은 층 이웃의 얼굴을 알고 있나’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단 한 곳도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대답이 36.5%(222명)에 달했다.

이 비중은 연령대가 낮을수록 높아져 20대의 경우 절반에 가까운 49.6%(70명), 30대의 경우 33.1%(115명), 40대는 30.8%(37명)가 한 아파트에 살아도 이웃주민의 얼굴을 전혀 모른다는 응답을 했다.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구로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자취를 하는 오모(28ㆍ여) 씨는 “사생활이 보장되고 간섭받지 않는 것을 원해 오피스텔로 왔다”며 “특히 혼자사는 여성의 경우 범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편물 등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정보들을 최대한 숨기며 이웃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반상회? 안 나가고 벌금 내죠=과거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반상회도 거의 사라져가는 추세다. 1976년에 생긴 반상회는 당시 정부가 유신체제를 선전하는 장으로 이용하는 바람에 반감을 사기도 했지만, 이웃끼리 얼굴을 보며 인사하고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순기능도 톡톡히 했다. 하지만 2011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서울 아파트 500가구를 대상으로 방문면접 조사한 결과 입주자대표회의와 자생조직, 반상회 등 주민조직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가구는 38.4%(192가구)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김윤희(38ㆍ여) 씨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반상회 관련 소식이 붙고 불참 시에는 벌금 1만원을 내야 한다는 경고(?)까지 있지만 맞벌이를 하는 상황에 꼬박꼬박 챙길 수가 없어 그냥 벌금을 내고 만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이사 초에 반상회를 몇 번 참석했다가 ‘남편은 뭐하는 사람이냐? 아이는 몇이나 있냐’ 등등 너무 사생활을 궁금해 하는 질문이 많아 부담스러웠다”며 “어차피 중요사항은 입주자대표회의를 통해 공지가 돼 굳이 참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주민들의 반상회 참여율이 저조하자 각 지자체는 트위터 반상회 등을 개최하며 참여를 독려하고 있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관계자는 “아파트는 공동시설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참여가 공공성 제고의 필수조건”이라며 “반상회가 단지 이웃의 얼굴을 보고 인사하는 것을 넘어서 관리비 등 주민 공동의 문제 해결에 필요한 모임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절은 소통으로 극복해야, 섬이 아닌 공동체로=서울 노원구의 청구3차 아파트는 주민들이 관리사무소 3층을 문화소통의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구청 지원을 받아 관리사무실을 리모델링한 뒤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주민 간 소통이 이뤄지고 믿음이 쌓이자 아파트 옥상에서는 상자 텃밭가꾸기 사업이 진행됐다. 규모가 커지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만드는 사업으로까지 발전했고 급기야 마을기업인 ‘청구EM환경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아파트 주민 전모(44) 씨는 “아파트 하면 바로 옆집 얼굴도 모른다는 단절의 이미지가 있었지만, 이와 같은 공동체 활성화를 통해 주민들 간 교류가 커지고 가족과 같은 믿음도 생기게 됐다”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파트는 현대의 단절된 삶을 보여주는 사회적 공간이자 대표적 주거형태”라며 “이런 점에서 주민 스스로가 공동체 운영을 통해 소통의 회복을 시도하는 것이 향후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설 교수는 “과거와 같이 무조건적인 공동체 의식의 함양보다는 각 세대의 특성에 맞는 목표와 운영 방식을 통해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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