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태형기자]지난 1일 오전 경북 청송 주왕산국립공원은 단풍객들로 북적였다. 대형버스를 타고 이곳을 찾은 단체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애초부터 주왕산 등산로가 목적지가 아니었던 만큼 얼른 인파를 피해 발길을 옮겼다. 향한 곳은 달기폭포. 월외폭포라고도 불린다.
유명한 폭포에는 하나 정도 있음직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달기폭포에도 전해져 온다. 차량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도로에 바로 인접해 있는 달기폭포는 폭포 밑의 용소 깊이가 명주실꾸러미를 다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을 만큼 깊다는 전설이 있다. 용이 승천하기에는 규모가 살짝 작아보이긴 한데 전설대로라면 물 속에서 곳추서서 수천년을 지내다 승천한 것이 아닐까싶다. 아님 그 예전에는 모두 자그마했으니 용도 작았을까. 생각을 비우기 위해 나선 길인데, 이상한 상상은 자유연상기법처럼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서야 주변 경관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주왕산 제1폭포(용추폭포)의 자연미가 여성적이라면, 달기폭포는 남성적인 늠름함이 느껴졌다.
주왕산국립공원 탐방안내센터에서 출발한지 4시간이 지나서야 달기약수탕에 이르렀다. 한바가지 들이킨 약수는 탄산, 철성분으로 떫은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뭐니뭐니해도 여행의 백미는 먹거리가 아닐까. 약수로 목을 축이고 소화에 좋다는 약숫물로 끓인 백숙 한 그릇은 먹어야 청송을 다녀갔다는 기분이 들 터.
식사 후 밀려오는 노곤함을 뒤로 한 채 2시간을 더 걸어 이른 곳은 운봉관이다. 청송의 객사(客舍)로,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의 사신들이 머무렀던 공공 숙박시설이다. 중당(中堂)에 임금의 전패를 모셔놓고 출장 중인 관원과 고을의 부사가 임금께 예를 올리기도 했다.
트래킹을 나온 중년의 남성들이 건물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5~6명의 젊은이들은 마루에 올라가 둥그렇게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일행 중에는 아예 드러누워 가을바람을 만끽하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여 ‘나도 한번 누워볼까’하는 충동이 들 정도였다.
이른 아침 서울에서 출발해 주왕산국립공원을 시점으로 하고 운봉관을 종점으로 한나절을 꼬박 걸었던 이 길은 외씨버선길의 첫번째 길이다. 국내 대표 청정지역인 청송, 영양, 봉화, 영월 4개군이 모여 만든 외씨버선길은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서 표현한 ‘보일 듯 말듯한 외씨버선’과 같다해서 ‘외씨버선길’이라 불려진다. 청정자연과 문화와 역사의 향기, 힐링이 있는 한반도 깊숙한 내륙의 숨은 길이다.
청송=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외씨버선길 첫째길 운봉관 청송=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외씨버선길 첫째길 운봉관 청송=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외씨버선길 첫째길 운봉관 청송=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한반도 내륙의 비경과 문화가 숨쉬는 총 거리 200km=전체 거리 200km에 이르는 외씨버선길은 모두 13구간으로 나뉜다. 이 중 경북에 위치한 구간은 모두 10구간이다.
첫번째 길은 주왕산ㆍ달기약수탕길로, 계곡과 폭포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를 벗삼아 우뚝 속은 기암과 골짝의 전설에 빠져 보는 재미가 있다. 두번째 길은 슬로시티길로, 송소고택과 서벽고택 등 전통가옥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고,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길을 따라 조상님네들이 다닌 옛 길을 추억하고 한지체험장에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세번째 길은 김주영객주길로, 등짐과 머릿짐에 삶을 맡겼을 이 땅의 민초들의 억척같은 삶을 떠올리게 한다. 솔향기에 취하면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고 계곡의 저수지는 들판와 맞닿아 걷는 이의 감성을 자극한다.
네번째 길은 장계향디미방길로, 두들마을에서 만나는 장계향과 디미방은 조선시대 여인의 손맛을 느끼게 한다. 청송과 영양에 걸쳐 있는 장계향디미방길은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반변천과 선바위의 전설을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 청양 고추 얘기를 꺼내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만큼 무슨 불똥이 튈지 모르니 여러 설(說)을 소개만 하는 걸로. 충남 청양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추라는 설, 경북 청송의 앞글자와 영양의 뒷글자를 따 왔다는 설, 경북 청송과 강원 양양에서 따 왔다는 설, 비싸고 고귀한 고추라는 뜻을 가진 ‘천냥고추’에서 변화됐다는 설이 난무한다.
다섯번째 길은 오일도시인의 길로, 항일 시인이자 국내 최초의 시 전문지를 발간한 일도 오희병 선생이 나고 자란 곳을 지난다. 동양적인 서정성을 노래한 시의 배경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청송=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외씨버선길 첫째길에서 바라본 용전천이 단풍에 물들어 있다. 청송=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외씨버선길 첫째길에서 바라본 용전천이 단풍에 물들어 있다. 청송=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외씨버선길 첫째길에서 바라본 용전천이 단풍에 물들어 있다. 청송=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여섯번째 길은 조지훈문학길로, 영양전통시장에서 시골 인심을 느끼고, 소나무숲길과 척금대에서 지조와 절개를 배우고, 조지훈 시인의 삶과 그의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일곱번째 길은 치유의길로, 일월산 자생화 공원에서 역사적 아픔이 묻어있는 일제시대 광산을 둘러보고, 반변천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의 경관을 바라보며 시대적 아픔을 공감할 수 있다.
여덟번째 길은 보부상길로, 분천에서 춘양으로 가는 길은 한국의 대표적인 오지이다. 보부상들의 이용한 길로, 삶의 고단함이 묻어있는 곳이지만 지금은 현대인의 삶을 위로하고 있다.
아홉번째 길은 춘양목솔향기길로, 춘양에서 5일장을 구경하고, 과수원을 따라 문수산 둘레로 자리잡은 마을과 마을을 통과할 때는 춘양목의 솔향기가 콧속 세포를 자극한다.
열번째 길은 약수탕길로, 조선 제일 오전약수에서 목을 축이고 노곤한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길이다.
강원 영월에 위치한 세 구간까지 총 13구간을 하루만에 둘러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여유 있게 둘러보려면 한 구간을 정해서 하루를 다 쓴다고 생각해야 제대로 된 힐링이 될 터이다.
청송=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외씨버선길 첫째길 주왕산 청송=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외씨버선길 첫째길 주왕산 청송=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외씨버선길 첫째길 주왕산 청송=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고택에서 하는 자연과의 대화, 시심(詩心)이 저절로=개인적으로 슬로시티길에서 고택체험을 권하고 싶다. 송소고택을 찾았을 때는 오후 6시밖에 안 됐는데도 벌써 주변이 깜깜했다. 불빛이 드문 곳이라 어둠은 더 짙게 느껴졌다. 이미 고택체험을 위해 사랑채를 차지한 여행객들이 물기에 젖은 머리를 닦으며 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자연 속에서 느끼는 고즈넉함도 좋지만, 사람이 자연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게 고택이다.
특히 송소고택은 청송 심부자집으로 유명한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지은 99칸의 대규모 저택인데, 현존하는 국내 99칸 전통 한옥 중에서도 보존 상태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숲길이나 밭을 따라 걷다보면 사과농장에서 사과를 따는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도 눈에 띄었다. 그리 싸지도 않지만 돌아오는 길에 산지 직송 과일을 사 오는 것도 여행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재밋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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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외씨버선기 청송 고택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외씨버선기 청송 고택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외씨버선기 청송 고택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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