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돈은 어떻게든 무차별화되고 외화되는 모든 것에 대한 상징이자 원인이다. 그러나 돈은 또한 오로지 개인의 가장 고유한 영역 내에서만 성취될 수 있는 가장 내면적인 것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기도 한다.”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은 이 한 마디로 요약된다. 막스베버와 더불어 독일 사회학, 더 나아가 사회학의 이론적 표준을 제시한 게오르그 짐멜은 평생 31권의 저서와 256편에 이르는 방대한 글을 남겼다. ‘돈의 철학’은 1900년에 나온 그의 대표작이다. 이 시기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후설의 ‘논리 연구’가 출간된 해로 20세기 가장 중요한 담론이 함께 나온 셈이다.
짐멜의 돈에 대한 연구는 자본주의 옹호에 가깝다. 짐멜은 당시에 유행하던 자본주의 비판에 맞서 자본주의가 이제 그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 없는 역사적ㆍ사회적 토대가 되었음을 강조한다. 그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당시의 비판처럼 문화의 파괴나 타락의 원인이 아니다. 그는 자본주의 자체를 문화, 즉 물질문화로 본다. 따라서 자본주의라는 물질문화는 새로운 정신문화의 물질적ㆍ경제적 토대가 된다.
짐멜은 책에서 자본주의 화폐경제의 토대 위에서 어떻게 문화가 가능한지 모색한다.물질문화와 정신문화 또는 객관문화와 주관문화를 결합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또 그 자체로 아무런 특성도 없고 무차별적인 돈이 인간의 영혼을 구제하고 개인의 인격을 발전시키며 자유를 함양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다.
여기서 그는 흔히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돈과 영혼을 결합시킨다. 돈은 개인을 그 영혼으로부터 멀어지게도 하지만 영혼으로 돌아가는 매개가 된다는 논리다. 짐멜은 먼저 돈의 속성을 철학적으로 파헤쳐 나간다. 돈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성격이나 특성을 갖지 않는다. 단지 많고 적음의 수량만이 유일한 규준이다.개인의 주관적 인격적 특성을 무시하고 단순히 수량적 관계로 환원함으로써 평준화시킨다. 탈개성화ㆍ탈인격화를 추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돈은 현대인의 사회적 삶과 문화적 삶의 물적ㆍ경제적 토대가 된다. 모순적이게도 탈개성화ㆍ탈인격화로부터 벗어나 개성과 인격성을 추구할 가능성은 다름 아닌 돈의 소유에 의해 주어진다. 노동과 투쟁의 유물주의적 단계를 벗어나 사회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주관적 삶의 양식에 관심을 갖고 발전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개인의 영혼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돈이 개인을 다시금 영혼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짐멜의 화폐 이야기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지점은 경제를 주체와 객체의 긴장관계, 즉 욕망으로 설명한 데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 담론이 그에게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에 따르면 경제는 다름 아닌 갈망과 노력, 희생을 통해 대상으로부터의 거리를 극복하고 다가가는 과정이다. 경제적 교환은 사물(대상)을 주관적인 가치 의미로부터 해방시켜 자체적인 경제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사물 스스로가 상호적으로 규정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러나 대상은 그 자체만 욕망되어서는 실제적으로 유효한 가치를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다른 대상이 욕망되어야만 가치가 생긴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유효한 가치를 특징 짓는 것은 지각하는 주체와의 관계는 아니다. 주체는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야 비로소 이 관계에 도달하게 된다. 고유한 가치를 획득한 대상에 대한 흥정이 이뤄짐으로써 주체의 희생은 확정된다. 말하자면 모든 경제는 상호작용이라는 관념, 보다 정확히는 희생이 수반되는 교환이라는 특수한 의미에서 상호작용이라는 것이다.
사용가치가 돈으로 등장한 원시경제의 등가물로서의 돈의 개념부터 순수한 상징적 성격으로의 발전, 돈이 역사적으로 실체에서 기능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과 사회학적 조건 등 돈의 진화 이야기는 110년 전에 쓴 것이어서 더 놀랍다.
짐멜이 돈의 속성을 철학적으로 탐색하며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바로 물질문화와 정신문화의 상호작용이다. 그에 따르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화폐경제는 건전한 정신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다.그러나 이는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돈은 그 속성이 인간을 점점 더 양쪽으로 몰아가고 탈인격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정신문화를 발전시키려는 의지와 능력이 중요하다고 짐멜은 강조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