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성연진ㆍ김현일 기자] 록펠러 가문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명문가로 꼽힌다. 그들이 갖고 있는 엄청난 자산 때문만은 아니다. 가문 대대로 전통처럼 내려오는 기부가 큰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도 후손들이 자선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어 록펠러라는 이름은 사람들 머릿속에 명문가문으로 각인돼 있다.

그런데 록펠러 가문의 ‘자선 DNA’가 태평양 건너 중국 대륙에까지 뻗어 있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게다가 그 출발이 19세기 중반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이같은 사실은 록펠러 가문의 5세 웬디 오닐(Wendy O’Neillㆍ53)에 의해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시작은 150여년 전인 18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석유재벌 존 데이비슨 록펠러 시니어(John D. Rockefeller Srㆍ1839-1937)는 24세에 처음 중국에 기부했다. 독실한 침례교도였던 그는 교회를 통해 중국 선교회 측에 선물로 10달러를 보냈다.

그는 16세에 첫 직업을 갖게 된 이후 날마다 지출 내역을 꼼꼼히 기록했다. 이때 중국에 전달한 기부금도 당연히 기록으로 남겼다.

   시간이 흘러 그의 고손녀 웬디 오닐은 어느 날 고조 할아버지가 남긴 가계부를 보고 오래 전 중국으로 전해진 10달러의 존재를 알게 됐다.

오닐은 “고조 할아버지가 부자가 되기 전부터 이미 전 세계 인류를 위한 일을 하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나중에 큰 돈을 번 존 D. 록펠러 시니어는 미국을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렸고, 특히 아시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중국 문화와 역사에 흠뻑 빠진 그는 서양의학 보급에 앞장섰다. 중국은 오랜 전통의 의술을 보유한 나라이지만 20세기 초 당시 현대 의학의 도입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결국 존 D. 록펠러 시니어는 존스 홉킨스를 본따 베이징에 병원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이것이 바로 현재 베이징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는 북경협화의대(Peking Union Medical College)이다. 이는 록펠러 가문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첫 연결고리가 됐다.

  존 D. 록펠러 시니어의 아들 존 데이비슨 록펠러 주니어(John D. Rockefeller Jrㆍ1874-1960)도 아버지의 중국 사랑을 이어갔다. 1921년 그는 아내 애비 록펠러(Abby Rockefeller)와 함께 미국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 기차를 갈아타는 등 긴 여정을 거쳐 북경협화의대 병원 준공식에 참석할 만큼 애정을 보였다. 오늘날 북경협화의대는 중국 의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기관으로 평가된다.

록펠러 가문과 중국의 ‘러브 스토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오닐의 할아버지 존 D. 록펠러 3세(1906-1978)는 1963년 아시아와 미국 간의 문화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아시아 문화예술 위원회(Asian Cultural CouncilㆍACC)를 창립했다. 현재 오닐이 위원장을 맡아 아시아와 미국 예술가들 간의 만남과 소통을 주도하고 있다.

그녀 역시 하버드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했고, 이후 UCLA에서 중국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오닐은 “어릴 적 집이 동양 예술품들로 가득 했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의 첫 남편도 중국인이었다. 베이징에서 3년, 홍콩에서 12년을 보내면서 두 자녀들도 홍콩에서 키웠다.

2008년부터는 중국 내 의과대학들의 교육과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록펠러 재단이 설립한 중국의료위원회(China Medical Board) 이사도 맡고 있다. 이외에도 록펠러 가문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관련 재단을 다수 소유하고 있다. 지금까지 록펠러가에서 중국에 기부한 돈만 해도 총 8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버드에 다니는 오닐의 딸(25)도 보스턴의 차이나 타운에서 이민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록펠러 가문의 ‘중국 사랑’ 전통이 150년에 걸쳐 지켜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