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등 타 유배지보다 건강한 삶 영위채식우위·절기맞춤·나눔과 절제의 ‘조냥’ 울타리내 텃밭 싱싱한 채소 그때그때 채취봄엔 깅이범벅, 여름에 먹는 자리지짐가을 갈치호박국, 겨울엔 콩국 상차림밥·반찬 한접시에 먹는 나눔음식 문화
김정희 등 타 유배지보다 건강한 삶 영위 채식우위·절기맞춤·나눔과 절제의 ‘조냥’
울타리내 텃밭 싱싱한 채소 그때그때 채취 봄엔 깅이범벅, 여름에 먹는 자리지짐 가을 갈치호박국, 겨울엔 콩국 상차림 밥·반찬 한접시에 먹는 나눔음식 문화
제주 유배는 한양에서 멀기에 유배형 중 가장 엄중한 처벌이었지만, 유배당한 인사들은 어느 유배지보다도 건강한 삶을 영위했다.
조선후기 세도가와 척지다 결국 제주로 유배된 추사 김정희 선생은 환갑을 넘기기 힘든 당시로서는 ‘장수’의 반열인 만 70세까지 살았고, 정조때 정치음모사건에 연루됐다가 30여년 제주 유배생활 끝에 형조판서로 복원된 조정철은 80세까지 장수했다. 조선 중기 문신 신명은 숙종때 당파싸움에 휘말려 제주 유배를 왔지만 제주식 생활에 익숙해지고 그곳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76세까지 살았다.
제주 향토 사학자들과 라이프스타일 연구가들은 2012년 5월 제주의 한 호텔에 전국의 푸드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제주 유배밥상 전시회’라는 특이한 토론 및 체험 행사를 가졌다. 결론은 정치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 유배는 리얼푸드, 웰빙 라이프스타일을 통한 힐링의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제주향토음식 김지순(78) 명인과 제주음식전문가 양용진 선생에 따르면, 제주 음식문화에는 채식우위, 절기 맞춤, 나눔과 절제의 ‘조냥’ 철학이 투영됐다.
재료의 신선함을 우선시하는 제철음식 철학은 제주도민의 자연친화적 라이프스타일과 무관치 않다. 모든 가구에 우영팥이라는 집 울타리내 텃밭을 두었는데 늘 자라는 싱싱한 채소를 그때그때 채취해 먹었다. 심지어 겨울철 눈 맞은 배추도 필요할 때 마다 따먹었다. 양용진 선생은 16~18세기 유럽에서 비타민C 부족으로 시민들이 괴혈병의 두려움에 떨 때, 야채는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웠던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제주의 ‘채식 우위’ 푸드 철학은 유럽 귀족 보다 앞선다.
봄에는 뼈를 강화하는 멜(멸치)국과 깅이(게)범벅, 고른 영양을 공급하는 잡곡밥, 배추,실파,칡잎 쌈 등 새봄 야채쌈을, 여름에는 웰빙형 고칼로리 음식인 자리지짐과 ‘황화알릴’ 성분때문에 원기 회복에 좋은 새우리(부추)김치, 멜젓 등으로 상차림한다.
가을에는 맛과 영양이 좋은 갈치호박국에 기관지,생리,종기 치료 등에 쓰이는 한약재 양하로 만든 양애지, 강된장, 배추 부추쌈, 겨울에는 식물성 보양으로 콩국, 우럭콩조림, 콩장(자반), 무장아찌, 자리젓 등으로 식단을 짰다. 4계절 밥상은 오랜세월 검증을 거친 건강식이고, 어느집에서나 비슷한 공동체형 식단이라고 할 수 있다. 야외활동을 하는 해녀들은 조림과 젓갈 위주로 먹으면서도 신선 야채를 싸가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나눔과 절제는 건강과 지속가능한 생활자원의 유지를 가능케 했다. 남편 밥그릇이 비어가면 아내가 채워주고, 착한 며느리를 본 시어머니가 며느리 그릇에 밥을 보태고, 어머니의 빈 그릇은 다시 아들이 채워주는 이어도 전설이 전부는 아니다. 대부분 괸당(친척)이고, 친척이 아니라도, 놀다가 아무집에나 들어가서 밥을 먹은 문화였다. 모두가 건강해야, 모두 잘 놀고, 잘 헤엄쳐서 생산활동을 잘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제주 공동체 전체가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밥과 반찬이 한 접시에 담겨 나눠지는 ‘반’ 문화는 세계 최초의 ‘뷔페’이자 제주 나눔음식 문화를 잘 말해준다.
먹을 만큼만 어획 및 수확하고 생산한 것은 좀처럼 버리지 않는 조냥 정신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제주생활문화와 통한다. 제주에서는 음식 부산물을 버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몸국은 돼지 삶은 국물에다 모자반해초와 내장을 넣고 끓인 것이다. 풋마늘대로 마농지를 담가먹고 쉰밥에 누룩을 섞어 건강 발효식품 디저트로 삼는다.
지난해 12월 하순 제주 보오메꾸뜨르 호텔에서는 제주 음식문화를 지켜려는 국내외 민관 인사들이 한데 모였다. 김 명인을 비롯해 김영진 제주관광협회장, 장신 중국 영사, 스즈키 미츠오 일본 영사, 이선화 제주도의원, 서울서 날아온 김수진 푸드앤컬쳐아카데미 원장, 조태옥 세종전통음식연구소장, 김창옥 한국요리사문화연구소 부회장, 안상관 한국음식문화원 이사, 전지영 세종대 겸임교수, 보이쿠 미하이 루마니아상의 매니저, 음식 전문 언론인 10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제주 음식문화와 나눔ㆍ절제ㆍ신해토불이(身海土不二) 철학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최근의 수많은 전문가의 리얼,그린,웰빙 푸드 지침서 못지 않은 가치를 갖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가장 아쉬워 한 점은 4계절 밥상이 제주 어느 집에나 있지만, 파는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새해 벽두 전통음식 식당 설계에 들어갔고, 오는 6월 문을 열 예정이다. 아울러 제주 4계절 음식문화의 전국화, 세계화를 위한 인프라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문어톳초무침, 자리젓, 자리강정, 돼지육개장, 몸국, 우럭콩조림, 마농지, 해물뚝배기, 갈치호박국, 새우리김치, 제주식 간장 게장, 매생이탕, 꿩 만둣국 등은 지금도 제주도내 전통 있는 식당이면 맛 볼 수 있다. 제주 7대 향토 명품음식인 자리돔물회, 갈치국, 성게국, 한치물회, 옥돔구이, 빙떡, 고기국수도 맛보기 어렵지 않다.
제주=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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