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추진 이스라엘-사우디 수교 좌초
이란 정치·경제적 반사이익 가장 커
전쟁 피해 커 이-팔 갈등 더 커지며
중동 불안 글로벌경제 ‘상수’ 재부상
이란 등 참전 국제전 가능성 낮지만
트럼프 재선시 상황 더 악화될 수도
가자(Gaza) 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지 일주일이 지나고 있다. 전쟁이란 비극적 상황에서까지 돈 얘기를 한다는 게 잔인할 수도 있겠지만, 자산관리 측면에서 이해득실을 잘 따져 이해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한비자(韓非子)도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이익을 얻는 자가 주동자”라는 ‘유반(有反)’의 지혜를 강조했다.
이번 가자전쟁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하마스의 노림수는 무엇인지 아직은 분명치 않다. 다만 이번 전쟁으로 누가 이익을 얻었는지, 누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는 지는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가장 큰 이익을 얻은 곳은 이란이고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이스라엘과 미국으로 보인다.
전쟁 발발 직후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태자는 “팔레스타인 편에 서겠다”고 밝혔다. 같은 이슬람으로써 이스라엘 편에 설 수는 없는 법이다. 달리 풀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 협상도 중단됐다는 뜻이다. 사우디는 핵을 원한다. 일단은 발전용이지만 결국엔 핵무장까지 이어질 수 있는 기술이다. 중동지역 핵확산을 꺼리는 미국은 애초 이를 계속 반대하다 이스라엘과의 외교관계 수립과 감산 중단을 대가로 허용하기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중동에서 유일한 핵 보유국(추정)은 이란이다. 시아파 이슬람인 이란은 수니파의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와는 앙숙이다. 이란과 사우디는 민족도, 역사도, 언어도 다르다. 친미 정책으로 왕정도 유지하고 원유로 막대한 돈을 번 사우디가 핵기술까지 확보하면 중동 패권에서 이란은 수세에 몰리게 된다. 심지어 사우디가 감산을 중단하면 유가하락으로 수입이 줄고 이란산 원유의 시장 점유율까지 위축될 수 있다. 그런데 절묘한 시점에 전쟁이 터지며 이스라엘과 사우디, 미국의 삼각 구도가 흔들리게 됐다. 배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란이 하마스가 이번 사태를 일으키는 데 직간접적인 도움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이란으로 인한 전쟁 확대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란이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인 헤즈볼라를 통해 간접적으로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란산 원유 상당부분이 중국으로 수출된다. 미국이 경제제재를 해도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미국이 급한대로 일단 우리니라가 이란에 지불한 원유수출 대금 60억 달러를 카타르에 동결시킨 이유이기도 하다.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이번 전쟁으로 중동 불안이 다시 글로벌 경제의 상수가 됐다는 점에서 장기 악재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당장 전쟁이 국제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중동 정세에 가장 민감한 시장 지표인 국제유가의 움직임이 예상보다는 잠잠한 점이 그 반증이다.
무엇보다 이란이 섣불리 뛰어들기에는 1973년 제3차 중동전쟁 때와는 정세가 다르다. 당시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은 이집트와 시리아가 남북에서 이스라엘을 협공했다. 현재 이스라엘은 접경한 국가 가운데 동쪽 요르단과 남쪽 이집트와는 평화조약을 맺고 있다. 심지어 현재 이집트 정부는 하마스의 원조인 무슬림형제단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세력이다. 동북쪽 시리아는 내전 중이다.
결국 북쪽으로 국경을 접한 레바논이 이스라엘엔 유일한 위협이다. 레바논 집권세력인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이다. 게릴라전에 능해2006년에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막아낼 정도의 무장과 전투력을 갖췄다. 이스라엘이 전쟁 발발 직후부터 북쪽 레바논 접경지대에 대한 공세적 경계에 나선 이유다.
레바논에는 다수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있다.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 희생자가 급등할 경우 레바논 여론이 악화될 수 있다.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헤즈볼라로서는 부담이다. 하지만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상황에서 이번 전쟁에 개입하는 것은 헤즈볼라로서도 부담이다. 이란이 지원한다고 해도 역부족이다. 우크라이나에 붙잡혀 있는 러시아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전쟁의 양상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하마스 축출이 이스라엘의 목표가 된 만큼 지상군의 가자지구 진입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시가전에 따른 이스라엘 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지상군 투입 전 상당한 폭격을 가한 후 목표물 제거에 들어가는 작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민간인에게 24시간 동안 피난할 시간을 줬다지만 턱 없이 짧다. 대규모 민간인 피해는 불가피할 듯하다.
피해가 커질 수록 양측의 협상을 종용하는 국제 여론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스라엘도 이번 전쟁을 길게 끌고 가기 어렵다. 2008년에도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와 충돌했지만 결국 협상으로 마무리 됐다. 당시엔 글로벌 금융위기 중이었고 지금도 미국의 긴축으로 전세계 경제가 어렵다. 이스라엘 경제가 튼튼하다고 해고 현재의 전시 체제를 오래 끌고 갈 수는 없다.
전시 거국내각이 구성됐지만 사법부 약화를 통해 권력기반을 다지려는 나타냐후 정부에 대한 이스라엘 내부 여론도 좋지 않다. 전쟁이 끝나면 나타냐후 총리가 실각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시간이 지날 수록 협상으로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진정시키려는 국제적 시도가 늘어날 듯 하다. 지난 역사를 봐도 중동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전쟁이 협상으로 끝을 맺었다.
새로운 불씨는 내년 미국 대선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국제공동 관할인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했다. 이란에는 적대적이었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해 이란을 압박하면 중동의 시아파 세력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다시 떠오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