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민상식 기자ㆍ이현용 인턴기자]경기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최근 호랑이 사고에 이어 흰코뿔소, 개코원숭이 탈주 등이 발생한 가운데 여전히 맹수가 비좁은 우리에 갇혀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상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일 오후 2시께 서울대공원 제3 아프리카관 약 33㎡(10평) 규모의 작은 방에 숫사자 10마리가 들어있었다. 사자 대부분은 비좁은 공간에 힘없이 누워있었으며, 이중 일부 사자는 반복적으로 유리벽에 머리를 부딪치는 등 이상행동을 보였다.
이날 동물원 북쪽 여우관에 위치한 말승냥이(회색늑대)도 우리 주변을 계속 왕복하는 행동을 보였다. 말승냥이 한 마리는 철창 바로 앞 5m 정도 거리를 원을 그리듯 왔다갔다했다.
이처럼 동물원 동물이 아무 목적없이 틀에 박힌 행동을 지속ㆍ반복하는 것을 ‘정형행동’으로 불린다. 이는 동물원 동물이 겪는 자폐증의 일반적 증세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야생에서의 행동반경에 비해 턱없이 좁은 우리, 관람객에게 수시로 노출되며 받는 스트레스 등이 정형행동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정순욱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야생동물이 비좁은 우리 안에 갇혀 주변 환경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 보니 지속적인 스트레스나 고통에 노출되면서 행동의 변화를 보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11월24일 호랑이가 사육사를 물어 숨지게 한 사건때에도 해당 호랑이는 이상행동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블로거가 인터넷에 공개한 사고 전날 해당 호랑이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면 호랑이는 비좁은 여우 우리 내부를 맴도는 정형행동을 반복했고,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쉼없이 앓는 소리를 냈다.
정 교수는 “좁은 우리에 갇혀 있던 호랑이가 갑자기 사육사를 공격한 것은 스트레스에 따른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대공원 등 국내 동물원도 사육 공간을 넓히는 등의 ‘동물행동 풍부화(Enrichment)’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지만 예산과 시간의 부족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밝혔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동물원에 대한 체계적인 법률 및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선진국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공간에 사육ㆍ관리해야 한다는 세부적인 규정이 마련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개체별 사육방사장과 우리 규격 등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다”면서 “최소한의 동물복지를 충족할 수 있는 관리 규정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