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경기도 수원지방검찰청에서 관계자들이 압수한 마약 등을 공개하고 있다. 검찰은 약 39만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합성 대마, 필로폰, 엑스터시 등의 마약류를 압수했다. [연합]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수원지방검찰청에서 관계자들이 압수한 마약 등을 공개하고 있다. 검찰은 약 39만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합성 대마, 필로폰, 엑스터시 등의 마약류를 압수했다. [연합]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사촌형이랑 고민상담을 하면서 술을 마시고 있었어요. 지금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별일도 아니었죠. 심리치료에 좋다면서 액상 대마를 줬어요. 술에 취했고, 궁금해서 한 모금했죠.”(마약 재활치료 중인 20대 황모 씨)

2020년 1월, 첫 시작은 가벼웠다. 술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건네졌다. 몸이 편안해지고 음식이 맛있게 느껴질 뿐 딱히 중독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음은 이른바 ‘브액’이라고 불리는 합성 대마였다. 그다음은 LSD, 엑스터시였다. 황씨는 ‘브액’과 엑스터시에 젖은 채 3년을 보냈다. 월급 270만원 중 200만원을 마약 구매에 썼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져 다니던 직장에서도 해고됐다.

12일 방문한 마약(약물)중독치유재활센터 경기도 다르크에서 입소자들이 미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마약중독과 현재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박지영 기자
12일 방문한 마약(약물)중독치유재활센터 경기도 다르크에서 입소자들이 미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마약중독과 현재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박지영 기자

또 다른 중독자 김모(29) 씨는 2021년 11월 필로폰을 끊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오히려 다른 약물에 중독됐다. 검사 과정에서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아 얻게 된 처방약에 중독된 것이다. 각성 효과가 있는 메틸페니데이트 때문이었다. 김씨는 아껴뒀다가 한꺼번에 복용하거나 내성이 생겨 약이 부족하다며 처방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ADHD약을 오·남용했다.

ADHD약 중독 상태가 이어지니 병원에서 진행되는 마약치료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김씨는 결국 퇴원 일주일 만에 필로폰을 다시 시작했다. 이들은 현재 마약(약물)중독치유재활센터 경기도 ‘다르크(DARC·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에서 수개월째 회복 중이다.

지난해 마약류 사범 2만명 육박…지인 권유로 자연스레 시작

대마향 젤리와 초콜릿. [EPA]
대마향 젤리와 초콜릿. [EPA]

손만 뻗으면 마약이다. 주변인 권유로, 몸이나 마음이 아파 약을 먹다가 시나브로 중독된다. 중독된 후에는 ‘마약을 위한 삶’이 이어진다. 버는 돈을 모두 마약 구매에 쏟아붓는다. 마약에 취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그리고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힌다.

마약에 삶을 빼앗긴 이들이 지난해에만 2만명에 육박한다. 대검찰청의 월별 마약류 사범 단속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류 사범은 1만8395명으로, 2011년 9174명에서 12년 만에 2배로 뛰었다. 사실 한국은 8년 전 이미 마약청정국 지위를 잃었다. 2015년 1만1916명의 마약 사범이 잡히면서 유엔 마약청정국 기준인 총인구의 ‘0.02%’ 벽이 깨졌다.

최근에는 마약이 범죄도구로 사용될 정도로 흔해졌다. 복용이 목적이 아니다. 성범죄, 금품 갈취, 살해 등 범행도구로 쓰인다. 지난 2~3일 서울 강남 일대에 배포된 ‘마약음료’에는 필로폰 성분이 들어 있었다. 마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미끼로 협박해 돈을 갈취하려던 일당의 소행이었다.

경찰은 이번 범죄가 마약과 보이스피싱을 결합한 신종 범죄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비슷한 시기에 강남에서 발생한 납치·살해 사건에도 마약이 사용됐다. 피해자를 납치해 살해하는 과정에서 마약 성분 마취제가 주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마 1회분 치킨값'…'감당할 수준' 가격도 접근성 한몫

신준호 강력범죄수사부 부장검사가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열린 대마 전문 재배·생산시설 적발 브리핑에서 압수된 대마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
신준호 강력범죄수사부 부장검사가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열린 대마 전문 재배·생산시설 적발 브리핑에서 압수된 대마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

마약이 일상에 스며들게 된 데에는 접근성 확대가 한몫했다. 메신저만 깔면 스마트폰으로 소매상들을 곧바로 접할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해져 가격도 떨어졌다. 대마 1g은 15만~20만원 상당. 1g에 3~5회가량 흡연이 가능하니 회당 2만~3만원 꼴이다. ‘치킨값’이다. 필로폰은 1g에 60만원이다. 중독자의 1회 투약분(0.08g)을 고려하면 회당 5만원 수준이다. 엑스터시는 1정에 15만원 정도다.

이 약물들은 대량으로 구매할수록 가격도 내려간다. 중독자일수록 더 싸게 구매할 수 있는 셈이다. 순도가 떨어지는 불량 마약은 이보다 더 저렴하다.

지난해까지 8년간 필로폰을 투약하다 적발돼 재판을 앞둔 박모(36) 씨는 “0.01g에 7만원 가격으로 판다. 하지만 대량인 1g을 사게 되면 300만원”이라고 말했다.

정희선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석좌교수는 “대마든, 필로폰이든 한 번 마약을 접하면 거기서 멈추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무조건 다른 약물로 옮겨가며 중독에 이르게 된다”며 “정제되지 않은 성분이 들어간 불량 마약도 실제로 많이 유통되는데 이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신체에 치명적”이라고 강조했다.


park.jiye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