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제주의 최초 여신 설문대 할망이 천지를 요동시키며 제주 땅을 다지고, 영등 할망이 사람이 잘 살도록 풍요의 씨앗을 뿌린 이후, 제주의 자연은 숱한 신비에 휩싸인다.
대표적인 것이 곶자왈이다. 서광, 한경, 화순 등 도처에 곶자왈이 있다. 여름에 숲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오고, 뿌리가 지하가 아닌 지상으로 뻗어나며, 열대 정글의 모양인데 상큼한 공기가 휘감는 곳. 과학인들이 거문오름 곶자왈 공기를 샘플 조사한 결과 숲 속 공기 자체에 살균, 건강 증진 등의 효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곶자왈은 현무암 돌무지를 기반으로 한 제주식 정글이다. 흙이 아닌 돌 위라서, 식물들이 뿌리 내리기 쉽지 않으니 땅 속은 물론 지상으로 까지 뿌리가 뻗어나온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뿌리 내리기 식물 보다는 넝쿨식물이 발달한다. 육지의 소나무는 S라인으로 휘어지면서 멋이라도 내지만, 제주의 나무들은 넝쿨 때문에 햇빛 보기 어려우니 하늘로 치솟아 곧다.
넝쿨이 나무를 휘감아 제주의 곶자왈엔 빛이 좀처럼 들지 않고, 고사리 같은 건강 양치식물의 좋은 식생 환경이 된다. 여름 곶자왈에선 지하 돌무지 틈새에 가둬진 찬 공기가 복사열과의 밀당 끝에 에어컨처럼 뿜어져 나오는 ‘풍혈’도 많이 발견된다.
신화는 서서히 인간 삶, 문명에 내려 앉는다. 제주의 꽃은 육지의 것과 다르다. 흰 수선화, 사루비아가 1월부터 피고, 작디작은 앵초꽃은 12월부터 2월 사이 귀엽지만 강인하게 피어난다.
유채꽃, 동백 역시 동지섣달 꽃 본 듯이 핀다. 라벤더와 유채는 심은 때에 맞춰 몇 달 지나 꽃망울을 터뜨리는 등 언제든 핀다.
본토와는 색다른, 제주의 이국적인 꽃들은 신비스러운 것을 상징하는 서역 즉 ‘서천의 꽃밭’ 스토리를 입는다.
할라궁이 여신이 서천 꽃밭으로 가서 아버지 사라도령을 만나고, 생명 꽃으로써 죽은 엄마 원강아미를 환생시킨 뒤, 제주 꽃 지킴이 ‘꽃감관’ 역할을 맡는 얘기이다. 제주의 꽃은 사람을 살리는 힐링의 대명사라는 의미를 품은 듯 하다.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신화역사공원에 가면 꽃밭에 있는 아이처럼 놀고 쉬며 사람을 살린다는 뼈오를꽃, 살오를 꽃, 피오를꽃, 환생꽃 등 생명꽃에 관한 이야기가 잘 담겨있다.
바람을 핀 신들 사이에 치정 갈등이 야기되고, 이는 마을 구획 형성과 연결된다. 바람웃도가 고산국과 결혼해놓고, 처제 지산국과 바람이 나 야반도주를 한다. 고산국이 추격해 서귀포 일대에서 담판을 짓지만 여의치 않자 고산국과 지산국 자매는 구역을 나누어 다스리게 된다.
마을 선택 방식은 돌에 실을 묶어 던지는 팔매질,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등장인물 흰늑대 할머니의 후계자가 잘 하던 뿡개질이다.
고산국은 서홍리, 지산국은 우알서귀라는 마을로 정했다. 서홍은 서귀포 시청이 있는 시의 중심가이고, 우알서귀는 웃서귀 아랫서귀를 모두를 뜻하지만 서홍과 동홍이 웃서귀이므로, 지금의 서귀동 일대로 추정된다.
동홍동엔 정방폭포, 서홍동엔 서귀포해양도립공원, 황우지해안, 외돌개, 서귀동엔 서귀포항, 새섬, 문섬, 소낭머리가 있다.
146만㎡ 규모의 드넓은 신화역사공원에는 곶자왈 오솔길 곳곳에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대문, 영등 할망의 신화 외에도, 동해 용왕의 딸로서 제주의 아이들을 잘 보살피고 ‘웡이자랑’이라는 제주 자장가를 지은 일뤠 할망, 한라산에서 솟아난 소로소천국·강남천자국에서 온 천하장사 궤네깃도, 후손을 점지해주고 병치레를 없애주는 제주식 미륵(미럭) 일렛당 등등.
드디어 신과 인간이 결혼을 하고 나라를 세운다. 신화역사공원은 한라산의 모흥혈에서 솟아난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등 세 선인이 바다 건너에서 온 세 공주와 혼인해 탐라를 건국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제주의 유일한 문헌 신화이다. 세 공주가 타고 바다를 건너 온 네모난 함 안에 문헌의 글자들을 새겨 넣어 그 분명한 의미를 드러냈다. 인간 주도의 섬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는 화살을 쏘아 거주할 땅을 정했다는 스토리가 구전되고 있다.
이 공원에는 ▷사람이 가서는 안되는 용궁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용왕이 속세 사람들의 출입금지를 명했다는 무단침입 탐험가 송씨 해녀 ▷삼별초 항쟁의 마지막 장수이지만, 탐라 국민에겐 불청객 중 하나인 김통정 장군을 한라 산신이 무기로 갑옷 비닐을 뚫어 물리쳤다는 얘기 ▷제주도 영웅 탄생을 막으려던 풍수사 고종달이 제주 수호신 ‘장수매’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 스토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나라를 구하려고 1만 마리 제주 말을 군대에 보낸 감목관 김만일 전기 ▷제주의 천하장사 오찰방과 힘센여자 도봉순 같은 ‘오찰방의 누나’ 이야기 등이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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