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배우 임지연(32)은 ‘더 글로리’가 끝나고도 대중에 의해 끊임없이 소비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연진아!”를 불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진’은 전국민적 ‘밈’이 됐다. 패러디도 다양해졌다. 특히 ‘주기자’ 주현영은 연진 캐릭터의 디테일을 코믹하게 살려냈다. 임지연은 악역 연기의 권위자가 됐다. 요즘 가장 핫한 배우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 학교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 동은(송혜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를 실행하는 드라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반응이 나왔다. 여기서 임지연은 동은을 괴롭히는 가해의 핵심 인물이다. 임지연이 송혜교를 제대로 괴롭혀 시청자들이 더욱 학폭 피해자인 동은에 감정을 이입해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연진이를 사랑해줘 고맙다. 저 뿐만 아니라 ‘더 글로리’ 배우들이 요즘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소감을 밝힌 임지연은 “아쉬운 게 많다. 못미치는 부분도 있지만, 최선을 다했다. 저는 요즘 동은(송혜교)에게 이입돼 ‘더 글로리’를 시청자로서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임지연은 “연진이가 이렇게 많이 불리면서 사랑받을 지 몰랐다”면서 “연진은 최고의 악녀라고 생각한다. 대본 읽을 때도 그 점이 느껴졌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연기해보려고, 주변 동료, 학교 선생님, 소속사 선배님들에게 아이디어를 얻어 잘 입혀보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러다 소시오패스 같이 아무 감정 없이 로봇처럼 해볼까 등등 다양한 걸 찾아본 결과, 결론 내린 것은 ‘나’였다. 기존에 볼 수 없던 ‘빌런’이다”고 전했다.
임지연은 “김은숙 작가님이 새 얼굴이 필요하다고 했다. 천사 같은 얼굴을 활용해 악마의 심장을 보여주면 어떨까 라고 했다. 기상 캐스터인 연진은 남편한테도 선한 얼굴을 하다 돌변한다”고 작가와 많은 대화를 통해 연진 캐릭터가 완성됐음을 알려주었다.
극중 연진은 동은을 괴롭히는 정도가 수위를 한참 넘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해 불가이다. 연진 무리라 불리는 빌런 5인방은 대놓고 친구에게 폭력을 가한다. “어쩌면 저렇게 당당하게 악행을 저지를 수 있을까”를 느끼게 한다.
“이들이 (동은을) 괴롭히는 이유를 찾지 않았다. 트라우마이건, 정신적, 선천적인 것이건 죄책감이라는 걸 느낄 줄 모르는 아이들이다. 연진은 어릴 때부터 가진 채 태어나고, ‘난 잘못한 게 없어’라고 생각한다. 출발점이 그런 거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자기 밑에 있는 애들은 그냥 쓸 수 있는 도구일 뿐이다. 그러니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는다. 나쁜 애들간의 케미가 잘 어우러진 것 같다.”
임지연은 악역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악역을 한번도 해보지 않아, 쉽지는 않았지만 내공이 쌓인다면 언젠가는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결과는 완벽한 성공이다.
“많은 사람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것도 어렵지만, 세상 사람들이 날 전부 싫어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시는 분이 날 미워했으면, 한 순간이라도 저를 이해하지 못했으면 했다. 저도 연진이가 용납되지 않는다. 작가님에게도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를 미워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임지연은 첫번째 도전한 악역 소감을 묻자 “사실 악역 이전에 다양한 장르,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는 작품을 하고싶었다”면서 “악역이어서가 아니라 새로운 걸 보여줄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더 컸다. 그동안 선한 역을 많이 해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날 못알아봤으면 했다, 연진이 단순 악역이 아니라 입체적인 캐릭터라 사랑을 더 많이 해주는 듯 하다”고 말했다.
임지연은 연진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소리 지르는 신, 담배 피는 신, 욕을 제대로 했다. 특히 욕과 담배는 어설프거나 어색하게 하면 안하는 것 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 한쪽 입꼬리를 올리면서 냉소적으로 웃는 표정을 짓는 디테일도 연구의 산물이다. 그는 “분노를 못 참고 소리를 지르다, 목소리가 갈라지기도 했다. 한 테이크씩 찍기도 했다”면서 “감정신을 찍고 집에 돌아오면 힘들었다. 저는 목이 갈라지는 걸 느꼈다”고 털어놨다.
극중 기상 캐스터인 임지연은 살인 등 악행의 결과로 교도소에 갇힌다. 함께 수감된 그의 엄마는 그를 못 본 체 한다. 연진은 교도소에서 날씨를 전하며 재소자들에게 혼난다.
“교도소 신은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연진이 받을 수 있는 최후의 벌이다. 가해자 재준(박성훈)처럼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 더 잔인하다고 본다. 연진은 끝까지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 자기가 했던 걸 되돌려받으면서 그안에서 썩어버리게 된다. 배우로서 연진 캐릭터로서 살아왔기 때문에 연진에 대한 애정이 있었는데, 마지막에 무너질때 나도 힘들었다.”
임지연은 “엄마는 무슨 일만 벌어지면 무속신앙을 찾는다. 연진이가 그런 엄마에게 버림받는 게 좌절이고 절망이었다. 감옥에서 나를 못본체 하는 등 엄마가 나에게 했던 모습은 어긋난 모성애다. 이것이 연진이 딸인 예솔을 대하는 데에도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임지연은 “동은 엄마 신은 소름끼치게 무서웠다”면서 “같은 빌런으로서 또 다른 빌런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2011년 데뷔한 임지연은 운좋게 상업영화로 출발했지만 많이 혼나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그래서 작품 하나하나가 절실했다. 임지연은 “한예종 재학 시절 독립 영화를 찍은 것은 카메라 앞에 서고 싶어서다. 그리고 소속사에 들어가 ‘인간중독’을 촬영했다”면서 “그게 다 저의 성장 스토리다. 연진도 사랑 받았지만, 또 언젠 가는 예전처럼 캐스팅 기회가 잘 안날 수도 있다. 할머니가 되어도 그럴 수 있다. 그게 배우의 길이다”고 전했다.
“실제 학창 시절은 어떠했냐”는 질문에는 “너무 귀여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더 글로리’를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 지를 물어봤다.
“내가 깡이 있는 배우, 앞만 보고 직진하는 배우라는 걸 알았다. 사실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했지만, 도전을 했고, 작품에 필요한 사람이 되는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내 자신에게 칭찬을 못하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어 내가 했네’ 하는 느낌이다. 다음 작품도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고 본다. 차기작 부담이 크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