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 ‘쿠싱증후군’, ‘부르느뷰병’, ‘윌슨병’. 이름도 생소한 희귀병들이다. 검색 해도 무슨 병인지조차 확인하기 힘들다.
누군가에겐 생사를 걸만큼 절실하지만, 대부분은 관심도 없는 희귀병 정보들. 이걸 하나의 앱으로 모으니, 또다른 판이 열렸다. 이 앱에 모인 희귀질환 환자·가족이 3만 6000명에 이른다.
한명의 희귀 환자로는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인데, 3만명 이상 모이니 기회가 열리고 시장이 생긴다. 이 가능성을 보고 창업한 이가 바로 올해 나이 35세, 정민후 대표다. 그리고 그 가능성에 카카오를 비롯, 주요 투자사가 쏠렸다. 그렇게 모은 투자금이 총 360억원에 이른다.
이 앱의 이름은 ‘레어노트’. 지난 2020년 헬스케어 벤처기업 ‘휴먼스케이프’가 만들었다. 휴먼스케이프를 창업한 장 대표는 이미 대학시절부터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서강대 경영학과 4학년 때 교내 창업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그는 당시 초기 임산부를 위한 앱을 개발했다. 초기 임신부들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병원과 연계해주는 모바일 앱 ‘허니비’다.
이 수상으로 그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에 초청돼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했다. 장 대표가 휴먼스케이프를 창업하게 된 계기다. 당시 미국 실리콘벨리에서 IT 기반 의료시장의 가능성을 접한 그는 대학생 신분인 2014년에 휴먼스케이프를 창업했다.
레어노트에 오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소비자들의 성형 견적을 내주고 병의원을 연결시키는 앱 ‘뷰티케어’를 개발했으나 의료법상 불법으로 분류돼 사업을 접어야 했다.
이후엔 첫 개발 작품인 허니비를 업그레이드한 임신육아 종합 플랫폼 ‘마미톡’을 2020년 선보였고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현재 마미톡 누적 사용자는 60만명이다. 이 앱은 인도네시아에도 진출했다.
그가 2020년에 선보인 레어노트는 흩어져있던 희귀질환 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앱이다.
그동안 환자는 질환 정보나 치료제 개발 소식을 질병관리청이나 각 병원의 희귀질환센터, 환자단체에 의존해왔다. 한 희귀질환 가족은 “국내에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 자체가 적다보니 알 수 있는 정보도 제한적”이라며 “환자 스스로 외국 기사, 임상사이트 등을 찾아보며 어떤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는지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레어노트는 현재 1000여개 희귀질환 정보를 제공한다. 1만개 넘는 임상시험 정보도 알 수 있다. 현재 3만6000여명의 희귀질환 환자 및 가족이 가입해 있다.
희귀질환 정보와 환자가 모이니 투자까지 이어지고 있다. 휴먼스케이프는 시리즈A 투자에 이어 2019년 프리 시리즈B로 50억원 투자를 받았다. 여기엔 녹십자와 한국투자파트너스 등이 참여했다. 그리고 2020년 시리즈B를 통해 다시 130억원을 유치했다.
2021년 말에는 카카오가 전략적 투자로 150억원을 출자했다. 휴먼스케이프가 지금까지 유치한 총 투자금은 360억원에 이른다. 카카오 투자를 유치한 후엔 미국 법인도 설립했다.
2월 28일은 ‘세계 희귀질환의 날’이다. 4년에 한번씩 2월의 마지막 날이 29일로 끝나는 2월의 희소성에 착안, 매년 2월 마지막 날을 ‘희귀질환의 날’로 제정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희귀질환은 7000여개로 추정된다. 환자 수는 전 세계적으로 2억5000만명에 달한다. 국내엔 1000여종의 희귀질환이 등록돼 있고, 약 50만명의 환자들이 있다.
환자 수가 적기 때문에 치료제가 없거나 가격이 비싸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도 많다. 밝혀진 희귀질환 중 치료제가 개발된 비율은 5%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세상에는 이름 모를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그들은 치료 영역에서 보호받고 있지 못하다”며 “많은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사명감을 갖고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ikson@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