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폰 등 전통적 마약 대신 카르텔 새 먹거리 떠올라
전통조직 시날로아, 中 삼합회 손잡고 원료 수입, 제조
신생 CJNG, 대담한 폭력행위로 시날로아 근거지 공격
美-멕시코 국경 티후아나, 펜타닐 제조·유통 ‘메카’로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흔한 진통제나 사탕 형태로 둔갑하는 신종 합성마약 펜타닐이 미국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올해에만 펜타닐 물량 만으로도 미국인 전체를 살해할 수 있는 양이 압수된 가운데 양대 카르텔인 시날로아와 할리스코 누에바 제네라시온(CJNG)의 주도권 다툼이 펜타닐의 확산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미국인 전체 죽음 몰아갈 양 압수
지난 20일 미국 마약단속국(DEA)는 올해 펜타닐 알약 5060만정과 페타닐 가루 1만 파운드 등 총 3억 7900만회 분의 펜타닐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앤 밀그램 마약 단속국장은 “(압수된 양은) 미국 인구 3억 3200만명 전체를 죽일 수 있는 양”이라고 밝혔다.
말기암 환자의 연명치료에 사용되는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은 환각 효능이 헤로인보다 50배, 모르핀보다 100배 강하다. 단 2㎎ 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독성과 중독성 강해 과다 복용에 의한 사망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치사량을 넘어서면 신경의 신호 전달을 차단하면서 호흡 곤란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미국 내 18~49세 사망 원인 1위로 불법 펜타닐 중독을 지목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약물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10만 7622명의 3분 2이 펜타닐 중독이다. 이는 교통사고, 총기 사고, 자살로 인한 사망자보다 많은 숫자다.
펜타닐은 필로폰이나 헤로인 등 기존 주요 마약과 달리 주사제나 정제 뿐 아니라 패치제로도 사용이 가능한데다 처방만 있다면 약국에서 합법적으로 구할 수 있어 손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의료보험이 없다면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미국 사회에서 저소득층이 병원을 가는 대신 진통제로 버티려는 경향이 강해 펜타닐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보통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진통제를 구할 경우 합법 약물로 위장한 펜타닐을 사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합법적인 처방을 통해 진통제를 구매하더라도 안심할 수는 없다. 약품의 유통과 품질관리가 열악한 만큼 약국에서 구입한 진통제에도 치사량을 넘어선 펜타닐이 함유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날로아 카르텔, 삼합회와 손잡고 펜타닐 생산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마약 시장에서 펜타닐의 제조(쿠킹)와 유통을 주도하는 카르텔은 크게 2개로 시날로아 카르텔과 CJNG가 바로 그것이다.
호아킨 엘 차포 구즈만 로에라가 이끌던 시날로아 카르텔은 필로폰(메탐페타민)과 코카인, 헤로인 등 전통적 마약 생산과 유통으로 성장한 멕시코 카르텔이다. 엘 차포는 2000년대 초반 메탐페타민를 만들기 위한 전구체(어떤 물질을 만들기 위한 전단계 화학물질)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 삼합회와 결탁했다.
이들은 중국 남부지역의 메탐페타민 생산을 삼합회와 함께 통제하는 과정에서 급성장하는 중국 내 제약 및 화학 산업 내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메탐페타민이 감기약 성분인 슈도에페드린에서 제조할 수 있다는 점이 주효했다.반다 펠밥 브라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삼합회는 중국 공산당과 정부 관리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보호를 받고 있는 만큼 시날로아 카르텔에게 중요한 수단이 됐다”고 설명했다.
시날로아 카르텔이 삼합회를 통해 구축한 네트워크를 통해 확보한 펜타닐과 그 전구체를 멕시코의 항구를 통해 빠르게 북미지역으로 확산됐다. 미국과 멕시코는 합동 단속 등을 통해 이들 물질의 유입을 막으려했지만 대부분 물질이 다른 용도로 쓰이는 합법 화학 물질인 탓에 제대로 된 단속이 어려웠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단속과 처벌 중심의 기존 마약 전쟁을 실패로 규정하고 미국과의 공조에 균열을 내면서 단속은 더욱 어려워졌다.
시날로아 카르텔은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에 따라 전구체 확보 네트워크를 중국에서 인도로 옮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운 선임연구원은 “인도는 중국에 비해 마약 정책의 통제가 약해 시날로아 카르텔의 좋은 예비 공급원이 됐다”고 전했다.
시날로아 카르텔은 시날로아 산맥 일대를 중심으로 한 지배 지역에서 이른바 ‘수수료’를 거둬들일 때에도 비교적 온건한 방법을 사용하고 강도 등 단순 범죄를 스스로 단속함으로써 주민들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티후아나 등으로 세력을 확대했다.
시날로아 카르텔은 미국과의 국경에 인접한 티후아나를 펜타닐 제조를 위한 핵심 기지로 삼고 2019년부터 중국산 전구체를 펜타닐로 가공하고 미국으로 수출하기 위한 수직적 체계를 구축했다.
CJNG, 공격적 세력 확장
CJNG는 전통적 카르텔인 시날로아 카르텔의 자리를 위협하는 신흥 카르텔이다. 이들은 멕시코와 미국 등 북미지역 뿐 아니라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도 시날로아 카르텔의 영향력에 도전하고 있다.
후발 주자인 CJNG는 마약거래, 인신매매, 매춘 뿐 아니라 또띠아 판매와 같은 합법적 판매에도 가혹하게 수수료를 거둬들인다. 지역 정치인이나 기업과 결탁한 시날로아 카르텔과 달리 경찰차를 무장 드론으로 공격하고 공개 처형을 진행하는 등 대담한 폭력에 기반한다.
CJNG는 시날로아 카르텔이 선점한 티후아나, 시우다드 후아레스, 바하 칼리포르니아 수르 등에서 시날로아 카르텔 소속 마약 조직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폭력을 동원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CJNG의 세력확장에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 CJNG는 실직한 화학자와 엔지니어를 대규모로 고용해 필로폰과 펜타닐을 제조하고 유통했다.
이후 이들은 펜타닐 전구체가 중국에서 도착하는 항구와 미국을 통과하는 경로, 국경 통과 과정을 통제하기 위해 시날로아 카르텔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멕시코 카르텔들이 중국 생산자를 대체해 어느 때 보다 많은 펜타닐을 생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 시기) 국토안보부는 밀매업자를 막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국경 장벽 건설에 110억 달러를 투입했다”면서 “DEA는 50년 역사상 가장 큰 도전에 직면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