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걸렸다. ‘반올림’(KBS2ㆍ2003)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지만, 드라마 주인공이었던 ‘옥림이’는 굴레였다. 열네살에 데뷔한 후 작품은 쌓여가도 고아라(24)를 설명할 대표작은 언제나 ‘반올림’이었고, 옥림이를 떠난 고아라에게 덧씌워진 건 이른바 ‘여신’ 캐릭터였다. 화장품 광고나 패션화보 속 여신의 이미지, 때맞춰 드레스를 차려입고 시상식을 방문하는 여배우로만 대중에 각인됐다. 그러나 드라마 한 편은 고아라 배우인생의 단추를 다시 채우게 했다. 케이블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11.9%)로 끝난 ‘응답하라1994’(tvN)에서 육두문자를 남발하고, 먹을 것에 집착하는 ‘이상민(연대 농구팀) 빠순이’, 들쑥날쑥한 감정선을 탔던 성나정을 연기하면서다.
“놀라울 정도로 도도하고 새침한 이미지로만 봐주시더라고요. 신비로운 여배우나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 이미지였던 것 같아요.”
고아라가 ‘응답하라 1994’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자 말이 많아졌다. 비난과 의구심을 담은 악성 댓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첫방송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10년 이미지를 깨고자 했던 고아라의 절실했던 바람도 이뤄졌다.
드라마가 끝난 이후 2013년의 마지막 날,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고아라는 사투리 대신 표준어만 쓸 뿐 나정이 모습 그대로였다. 워낙에 밝고 쾌활한데다 신비주의 여배우보다는 생활인에 가까운 모습. 몇 번의 칭찬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쑥쓰러워하고, ‘여배우로 불리는 것조차 불편해하는(신원호 PD)’ 성격. 그런 고아라를 알아본 눈들로 인해 그는 데뷔 10년 만에 날개를 달았다. 긴 생머리의 청순한 외모, 순정만화 속 주인공으로 상징되던 ‘첫사랑 이미지’도 고아라로 인해 바뀌어졌다.
“사실 나정이와 닮은 점이 많아요. 편안한 걸 좋아해요. 저 시골사람이잖아요. 소똥냄새 맡으며 자라서 그런지 시골음식도 좋아하고요. 특히 순대국밥이요! 나정이처럼 많이 먹진 않아요.”
경남 진주 출신의 ‘사투리 능력자’였기에 나정이다운 짬뽕 사투리도 가능했다. 캐스팅 순간부터 망가지기로 작정했다. 늘 배가 고픈 나정이를 만나기 위해 5㎏을 불리고 촬영을 시작했다. 드라마를 찍으며 2㎏이 더 늘었다. ‘정리의 달인’이었던 나정이 못지않게 취미가 정리였고, 주사가 깨물기라 별명이 ‘미친개’였던 나정이처럼 “아기들을 보면 깨물어주고 싶다”고 한다. 물론 술에 취해 아무나 물지는 않는다. 생활연기의 완성은 그의 실제 모습에서, 90년생 고아라가 94학번 나정이를 표현한 비법은 대학 도서관에서 섭렵한 자료에서 나왔다. 인구도수표까지 찾아봤을 정도다.
애틋한 첫사랑과 복잡한 감정선을 따라가야 하는 나정이의 오락가락하는 성격이 초반엔 혼란스러웠지만, 고아라는 “대본을 받을 때마다 첫사랑 향방에 노심초사했을 만큼 나정이 안에 푹 빠져 지냈다”고 한다. 잊지 못할 선물이었다. 드라마 덕에 유리성 안에 살던 여신 이미지는 깨졌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배우가 됐다. 가족같은 팀워크는 현장의 재미도 알게 해줬고, 내공있는 배우들과의 만남은 연기자로 나아가야 할 길도 일러줬다.
인터뷰 내내 고아라는 ‘감사하다’는 말을 달고 있었다. 고정된 이미지를 깨고 ‘변신’이라고 봐준 시청자에게도, 현장에서 만난 ‘연기의 달인’ 선배들에게도, 자신의 모습을 나정이로 만들어준 신 PD와 이우정 작가에게도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러니 두 콤비의 작품이라면 “청소부 역할이라도 무조건 오케이”다.
“이제 시작인 것 같아요. 지금의 절 나정이로 편하게 봐주시는 게 기뻐요. 제 모습 그대로 교감할 수 있는 연기자가 됐다는 게 감사합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하얀 도화지 같은 배우, 성장하는 배우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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