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에는 추위에 리어카 끌고…한시간 돌아 다녀 1000원 벌어 자식 있어도 저먹고 살기 힘들어…돈 달라고 않는게 그나마 다행 이것도 이젠 갈수록 경쟁 심해…하루 몇백원 쥐는 날도 수두룩
갑작스레 찾아온 강추위에 눈발까지 휘날린 지난 5일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의 한 고물상 앞. 점심때가 지나고 오후 2시가 되자 온갖 폐지와 고철, 빈 병 등이 수북이 쌓인 리어카를 끈 노인들이 하나 둘 이곳으로 모여든다. 고물상 저울에 리어카를 올려 무게를 잰 뒤 폐지와 고철을 분류하는 그들의 손이 분주하다. 노인들은 이내 1000원짜리 몇장을 손에 쥐고 다시 리어카를 끈다.
태양이 높게 뜬 한낮인데도 살을 에는듯한 바람이 인정사정 없다. 노인들의 입에서 “아이고 춥다” 소리가 탄식처럼 흘러 나온다.
그 광경을 한참동안 우두커니 바라보다 마침 계산을 끝내고 고물상을 나서는 한 노인에게 말을 붙였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저는 신문기자입니다. 추운데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폐지줍는 사람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폐지줍는 사람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그는 기자를 흘끗 바라보더니 이내 “아니여”라며 리어카를 끈 채 바삐 발걸음을 옮긴다. 두어명의 노인들에게도 말을 붙이며 따라갔지만 역시 시큰둥한 반응이다. 가득 찬 리어카를 털어 내자마자 다시 골목으로 향하는 노인들에게 말 몇 마디 나누는 여유조차 사치일까.
‘따뜻한 캔커피라도 드리면 마음을 좀 여실까’ 머리를 굴리던 차에 한 노인이 길을 멈췄다. 백발이 희끗한 할아버지는 김순재(76ㆍ가명) 씨다. 김 씨는 추위에 얼어붙은 입을 어렵게 뗀다. 그는 “이 동네 60~7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거의 다 나와. 경쟁이 워낙 심하니까 한 시간 돌아다녀 1000원 벌면 잘 버는 것”이라고 한다. ‘한 시간 돌아다녀 1000원.’ 가볍게 캔커피 값이, 그들에겐 강추위 속 한 시간 노동의 대가였다.
김 씨는 “하루 온종일 열심히 다니면 1만원 정도 벌고, 운 없으면 3000~4000원 정도 돼. 나라에서 지원금 나오는 거랑 해서 간신히 먹고 살어”라며 “이것 말고는 다른일 할 수 있는 게 없어. 돈을 벌 데가 있나”라고 한다.
자녀들 얘기를 꺼내자 김 씨는 “우리 애가 한달에 200 버는데 걔들도 지 애들 공부시키느라 사는게 팍팍해. 손 벌리기가…”라며 리어카를 끄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김 씨는 폐지 줍는 걸 자녀들에게 숨긴다.
근처에서 리어카를 끌고 있는 또 다른 할아버지 박항복(73ㆍ가명) 씨는 무엇이 힘드냐는 말에 “(고물상에서) 쳐주는 폐지값이 너무 적고, 경쟁도 너무 치열해. 그런데다 다들 사는게 어렵다보니 고철은 보기도 힘들어. 하루에 동전 몇개 밖에 못 벌 때도 있어”라고 했다.
박 씨 역시 일흔이 넘은 나이에 다른 일자리는 언감생심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하는거지 나이만 좀 젊었으면 노가다라도 했을텐데”라며 “이거라도 하니까 자식한테 손 안벌리고, 약이라도 사먹는다”고 했다. 자녀들은 박 씨에게 폐지 줍는 일을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얼마라도 내 손으로 버는 게 다행이지 싶다.
눈발이 그치며 때이른 한파가 몰아친 2일 오전 11시 노원구 하계동의 한 아파트 상가 앞. 길바닥에 놓인 박스 더미를 리어카에 분주히 싣고 있는 최용식(51ㆍ가명) 씨를 만났다. 미혼인 최 씨는 장애를 가진 동생과 둘이 함께 살고 있다. 전날보다 더 떨어진 수은주와 칼같은 바람속에 돌아다니는 게 고역이지만 최 씨는 “이일이 5년째인데 오늘보다 더 추운 날도 나와서 폐지를 줍는다”면서 “취업할 곳이 없으니 이것 말고는 대책이 없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나가는 봉고차를 보며 최 씨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최 씨에게 주기적으로 폐지를 내주는 교회 사람들이라고 한다. 최 씨는 오전 6시반 부터 폐지를 주우러 나왔다고 한다. 이제 겨울이라 아침에도 캄캄한데 서울시에서 지급해준 형광조끼는 하고 다니는지 묻자 “그거 다 떨어졌다더라. 부족해서 못 준다고 좀 기다리라고 했다”며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앞서 지난 4월 서울시는 서울에 거주하는 폐지줍는 노인들을 6354명으로 추정해 총 6600여벌을 지급한 바 있다. 이에 봉주헌 자원재활용연대 의장은 “서울시의 폐지 노인 통계는 잘못된 것”이라며 “전국의 폐지 노인들을 175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관에서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하다보니 통계 오류가 나고 못 받는 사람들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7일 오후 5시 동대문구 이문동의 한 도로. 이말순(78ㆍ가명) 할머니가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있다. 말을 붙이자 “아이고 기자 양반 나 부탁좀 합시다. 좀 도와줘”라며 가던 길을 멈춘다.
“이런거는 다른 일 못하는 사람들이나 할 수 없이 하는거여. 장애인들, 나같은 노인네들이나 이거 줍지”라고 운을 뗀 이 씨는 “근데 다른 고물상들은 1㎏에 80원씩은 쳐주는데 이동네는 1㎏에 60원밖에 안 쳐줘요. 다른 것도 다 20원씩은 싸. 너무 악덕 상인 아니여?”라며 하소연한다.
이 씨는 “폐지 20㎏면 다른 데를 가면 400원을 더받는건데, 다리도 안 좋은데 너무 멀어서 거기까지 가질 못한다”라며 “하루에 50㎏ 주우면 3000원이여. 근데 우리같은 할매들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못주워. 난 길건너 과일장수가 알던 양반이라 그 사람이 (폐지를) 챙겨주니까 그나마 살지. 할매들 이틀 주워도 50㎏도 못 줍는데, 이런 사람들한테 10원 20원 깎지 말어”라고 호소한다.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지낸다는 이 씨를 자식들은 얼마나 도와줄까. 이 씨는 “용돈? 자식들이 부모한테 손 안벌리면 다행이지. 정말 다들 어려워 대학 나왔어도. 애기들 가르치랴 월세내랴. 그래서 내가 안 받는다”며 마치 자식들이 눈 앞에 있는 듯 손사레를 친다.
이 씨는 “몸이 너무 아프면 못 나오는데 그땐 나라에서 주는 20만원 갖고 그냥 사는거지. 병원에 1500원씩 주고 다니고 1200원씩 주고 약 짓고, 그냥 그렇게 살아야지 어쩌겠노”라며 입을 다문다.
이튿날 예보된 눈 소식에 일요일인데도 길을 나섰다는 이 씨에게 따뜻하게 챙겨 입으셔야 겠다고 했더니 “아직 견딜만해요” 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말순 할머니는 다시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리어카를 끈 채 도로 위로 느린 걸음을 걷는다.
배두헌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