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영상 사회부장]“27년을 함께한 00을 떠납니다. 마치 신호등 없는 복잡한 교차로에 선 느낌이지만…, 이제 비우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동안의 도와주심에 감사드리며, 열심히 사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요즘 기자는 이같은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자주 받는다. 재계 출입때 인연을 맺었던 이들로부터 오는 문자다.
12월 인사시즌과 무관치 않다. 초고속 승진을 하며 환호하는 이도 있지만, 때(?)가 돼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며 침울하게 떠나야 하는 이도 있다. 이들이 보내는 ‘안녕 인사’가 바로 이 메시지다.
메시지를 볼때마다 가슴 뭉클하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세상 사는 진리를 다시금 깨우치게 된다.
그렇다. 세상의 영원한 내 것은 없다. 누군가에게 물려줄 자리를 잠깐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같은 원리로, 자신이 잘한다고 해서만 환호를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누군가의 희생과 양보가 있기에 그 영광의 순간을 맞이할 뿐이다. 부모의 ‘휘어진 허리’를 발판으로 성장하는 자식이나 선생님의 열정을 먹고 크는 학생 역시 그렇다. 그 자식과 학생 역시 언젠가는 희생과 양보를 해야 할 순간이 오는 것, 그게 세상 이치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는 곳이 있다. 청와대다. 마치 영원한 권력을 거머쥐었거나, 거머쥘 생각만 가득차 있는 듯 하다. 감사하게 얻은 정치권력을 시민을 위해 쓸 생각은 하지 않고, 소통없이 암투와 모략으로 현재 권력에만 탐닉하는 데 열중하는 것 같아 보인다.
비선 실세로 지목되고 있는 정윤회 씨를 둘러싼 ‘청와대 문건 유출 의혹’ 사건은 대표적이다. 청와대 출입을 해본 기자는 이 사건을 탐욕이 낳은 역대 최고의 코미디로 규정하고 싶다.
이유는 뭘까. 세계일보 보도로 촉발된 문건유출 의혹의 핵심은 문건 자체가 아니다. 누군가 권력암투용으로 찌라시를 작성했건, 그것은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 청와대에서 이같은 정국을 뒤흔들 문건이 유출됐다면 그 당사자는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할 일이지만, 이는 핵심은 아니다.
핵심은 대통령으로부터 공식 임명을 받은 적이 없는 정윤회 씨나 박지만 씨의 얘기가 오르내리면서 왜 이들이 권력 정중앙 인물로 거론되는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잘못된 것인지 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청와대 주변인들이 정씨나 박 씨에게 줄을 대려 한 사실이 있는지, 이들을 활용해 영구권력을 탐하려 했는지, 그것이 국민들이 궁금해 한다는 점이다. 문건 유출 자체 규명이 필요하지만, 정 씨나 박 씨에게 줄을 대려고 한 이가 있다면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그래서 나오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역시, 좀 전에 안녕을 고하는 문자가 왔다. 대기업에서 수십년간 일했던 이다. 기자의 답신은 이랬다.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다만 손에 놓는 게 있으면 다른 뭔가가 잡힐 겁니다. 그것도 큰 뭔가가요. ㅎㅎㅎ. 심지 굳건히 하시길….”
청와대나 대통령은 이 함의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영원한 것은 없다. 현재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권력으로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그 시간이 끝나면 야인으로 돌아가는 것. 그런 생각이라면 정 씨가 됐든, 박 씨가 됐든, 이같은 코미디가 방영될리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