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주고 산 아이템·앱·음원…나 죽으면?
100세시대 수많은 정보 온라인에 쌓여 디지털 세대 사망자 ‘유품 처리’ 고민 현재는 수천만원 아이템도 상속 못해
전문가들 “잊혀질 권리 소중해” 지적 법규정 논의 활발…사회적 공감대 절실
“물려줘야 하나?”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누구나 하는 생각. 동산이나 부동산 등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재산이 없다면 이런 고민이 덜할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같은 최첨단 디지털 시대를 맞아 온라인에 자신의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경제적 가치가 있는 카드사 포인트나 항공사 마일리지에서부터 사이버캐시, 게임 아이템, 온라인 상품권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내 계정에서만 구동되는 각종 앱, 음원, 동영상은 돈주고 산 것들이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다 올린 사진, 블로그에 적은 글, 1990년대 중반 만들어 지금까지 줄곧 사용한 이메일 계정은 어찌 보면 내 분신과 같다. 추억이 담긴 디지털 자산은 돈보다 소중하다. 게다가 나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이었다.
‘디지털 유품(遺品)’, 어떻게 해야 하나. 죽는다고 온라인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수많은 정보가 온라인에 쌓이고 있다. 디지털 세대 사망자들이 속속 생기면서 그들이 남긴 정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인터넷 보급률 1위의 한국이 떠안은 숙제다.
2010년 ‘게임 머니 및 아이템의 현금 거래는 합법’이란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어떤 게임 아이템은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상속할 수 있을까.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관련법이 없는 이상 상속을 금지한 이 게임 회사의 약관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항공사 마일리지와 카드 포인트는 어떨까. 마찬가지다. 항공사의 약관에는 ‘마일리지는 회원 사망 시 소멸되며 상속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법원은 해당 조항을 불공정 약관으로 볼 수 없다며 원고(마일리지 보유자의 유족) 패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사정이 이렇지만 국내 카드사들은 대부분 고객 만족 차원에서 포인트 상속 서비스를 유족에게 제공하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디지털 유품도 물려줘야 하나. 전문가들은 사망자의 ‘잊혀질 권리’도 소중하다고 지적한다. 현행법은 제3자가 남의 정보를 이용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포털서비스 사업자마다 약관의 차이는 있지만, 상속인도 3자로 판단한다.
상황마다 다른, 유품마다 다른, 사람마다 다른 판단이나 생각으로 혼란이 빚어지자 디지털 유품 상속에 대한 법제화 논의가 18대 국회에서 처음 이뤄졌다. 19대 국회에선 김장실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5월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이인용 수석전문위원은 “‘디지털 유산(遺産)’은 범위가 확립되지 않았으며, 기술발전과 서비스 변화에 따라 유형이나 승계 필요성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법률에 규정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갈길이 멀다는 얘기다.
KB경영연구소 정훈 연구위원은 “경제적 가치가 있는 디지털 유품의 상속 여부부터 차근차근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특정 사이트 집중도가 높은 만큼 인터넷 사이트 회원 가입 시 자신의 계정에 저장되는 정보의 사후(死後) 상속 여부에 대한 의사 표시나 등록을 하는 것도 유용한 방안으로 꼽힌다. 디지털 유품은 자연스런 산물이다. 가치의 존중과 더불어 상속 여부 논쟁이 확산될 전망이다.
조동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