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왕실의례 전시실서 공개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1866년 3월21일 고종 이희는 여흥민씨 집안의 민야영(자영)과 운현궁의 안채 노락당에서 결혼식(가례)을 올린다. 개인으로 보면, 둘은 국제정치적 격동기의 피해자이기에 측은지심을 유발케하는 몇 안되는 조선의 임금부부다.
불과 한달전 정부가 천주교도를 무자비하게 탄압한 병인박해가 있었고, 그해 여름~가을, 여러 서양 배가 들락거리며 종교탄압에 항의하고 마침내 그해 11월 프랑스함대가 조선정부의 종교탄압을 구실로 강화도를 도발하는 일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던 때였다.
물론 강화도 수비대의 항전으로 프랑스군을 격퇴했지만. 둘의 결혼은, 그 이후 조선을 무대로 벌어질 동-서양 강대국들의 각축전을 알 턱이 없었다. 그해 서양에서는 공교롭게도 1차 세계대전 도발 동맹국인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간 갈등과 이합집산이 요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가례에 앞서 3월 6일 명성황후로 간택된 민야영은 가례 이전까지 결혼식 물품들을 챙기는데, 와야할 비녀가 제대로 왕실에 도착하지 않았다.
꼼꼼한 명성황후는 왔어야 할 것, 안온 것, 준비완료된 것 등등을 상궁을 시켜 자세히 적어두도록 했는데, 그 중 비녀에 관한 기록, ‘보잠발기(寶簪件記)’가 지금도 온전하게 잘 보존돼 있다. 보잠발기의 필체는 흘림체인 명성황후의 것은 아니다. 인쇄된 듯 정확히 쓴 것으로 보아 기록 담당 상궁이 적은 것으로 보인다.
기록물은 별도로 부착한 작은 쪽지를 일컫는 첨지를 통해서 작성 시기와 배경을 파악할 수 있다. 부착된 종이에는 ‘병인 가례시 보내 오실때 볼래 아니 보내오시니(병인년 가례 때 보내오실 때 본래 아니 보내오신 것)’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병인년 가례인 1866년 고종과 명성왕후의 가례에 쓰였던 비녀이며, 처음에 도착하지 않았던 비녀를 다시 마련하면서 목록이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록물의 표지에는 ‘보잠발기(寶簪件記)’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보잠은 ‘보배로운 비녀’를 의미한다. 발기는 주로 왕실 의례에 소용되는 물품, 인명 등을 나열하여 작성한 목록으로, 한자로는 각 건(件)에 대한 기록(記)이라는 의미의 ‘件記’라고 표기하는데, ‘件’은 우리 옛말로 ‘발(아래아)’로 불러 ‘발기’라고도 하였다.
한글로 작성된 이 기록물은 두툼한 붉은색 종이를 아코디언 식으로 접어 직사각형 형태로 만든 첩으로, 첩의 표지는 직물로 만들어 기록물의 품격을 높였다. 종이의 표면에는 물품의 목록을 바르게 쓸 수 있도록 표시를 해두었는데 상당부에 기준점이 되는 작은 구멍을 내고, 그 아래 세로로 홈을 낸 칸을 마련하여 흐트러짐 없이 글을 쓸 수 있게 하였다.
비녀는 큰머리와 조짐머리 장식으로 나누어 작성하였다. 큰머리는 국가의 가장 큰 의례를 행할 때 입는 대례복에 갖추는 머리 모양이며, 조짐머리는 궁중 머리 모양 중 가장 약식의 머리 모양이다.
발기는 업무상 확인을 위한 용도부터 최종 보관 용도까지 목적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확인된다. 그중 도톰한 색지와 직물로 된 표지를 갖춘 이 기록물은 여러 번 작성을 거친 최종 보관용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인규)은 7월의 ’큐레이터 추천 왕실 유물‘로 ‘고종과 명성황후의 혼례 때 사용한 비녀 목록을 적은 기록’을 정해 4일부터 왕실의례 전시실에서 공개하고, 문화재청과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으로도 공개한다. 국·영문 자막과 함께 해설도 실었다.
abc@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