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원승일 기자] 우리 경제가 일본과 같은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한국은행이 추가로 금리 인하에 나서는 등 신속한 통화완화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함께 나왔다.

이재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25일 천안에서 열린 KDI 주최 출입 기자단 정책세미나에서 ‘일본의 90년대 통화정책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이 연구위원은 “저인플레이션 상황이 지속되면서 시장 참가자들의 인플레이션 기대가 낮아져 고착화되지 않도록 물가안정목표(2.5∼3.5%)를 지키기 위한 통화 당국의 적극적인 의지 표명과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통화 당국이 잠재성장률 하락에 따른 자연 실질금리의 하락세를 반영하지 못하거나 기대 인플레이션의 하락을 감지하지 못한 가운데 금리 정책을 수행하면 디플레이션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인플레이션 기대가 하락하면 금리 인하에 따른 경기 부양 효과가 희석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위원은 일본이 1990년대초 정책금리를 수차례 낮췄지만 물가상승률이 더 빠르게 낮아지면서 실질금리가 오히려 상승해 명목금리 인하에 따른 금융 완화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일단 디플레이션이 고착화되면 금융 부채나 재정 등에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정책 대응 수단도 제한될 것으로 내다봤다. 디플레이션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신속한 통화완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이는 KDI가 디플레이션 대응 차원에서 추가 금리 인하를 주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KDI가 독립성을 지닌 중앙은행에 이처럼 강도 높게 금리 인하를 주문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 연구위원은 수요 부진에 따른 성장세 둔화와 인플레이션 하락이 상당 기간 지속하면서 한국에서도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최근 수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 목표 범위를 크게 하회해 1%대에 머물고 있으며 GDP 디플레이터 상승률은 0%에 근접할 정도로 하락했다는 점이 그 근거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2년 2.2%, 2013년 1.3%를 기록했으나 GDP 디플레이터는 2012년 1.0%, 2013년 0.7%로 더 낮은 수준이었다. GDP 디플레이터는 국민소득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경제활동을 반영하는 종합적 물가지수로 소비재가격만 반영하는 소비자물가상승률(CPI)과 일부 격차가 있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의 GDP 디플레이터는 소비자물가에 선행하는 경향이 있어 1% 미만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실제로는 디플레이션 상황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