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 1호·유네스코 등재 20년

악·가·무 어우러진 찬란한 궁중문화

中 문무제례악 반기 세종대왕이 작곡

해마다 송년공연 중요 레퍼토리 등장

꾸준한 고증 작업·다양한 콘텐츠 확장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 가치이은 진화

앰비언트·테크노...요즘음악으로 선보여

국가 무형문화재 1호인 종묘제례악은 오랜 시간 꾸준히 복원되며, 공연 콘텐츠로의 다양한 확장을 시도해오고 있다. 1999년 역사가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전막 극장 공연으로 선보인 이후 복식, 악기 종류 등을 고증하고 되살리며 새로운 시대의 종묘제례악을 선보여왔다. 전통 복원을 넘어 가치를 이어받은 일렉트로닉 버전의 종묘제례악도 등장했다. [국립국악원 제공]
국가 무형문화재 1호인 종묘제례악은 오랜 시간 꾸준히 복원되며, 공연 콘텐츠로의 다양한 확장을 시도해오고 있다. 1999년 역사가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전막 극장 공연으로 선보인 이후 복식, 악기 종류 등을 고증하고 되살리며 새로운 시대의 종묘제례악을 선보여왔다. 전통 복원을 넘어 가치를 이어받은 일렉트로닉 버전의 종묘제례악도 등장했다. [국립국악원 제공]

“마그니피크(Magnifiques·대단하다).”

한국과 프랑스의 수교 130주년이었던 지난 2015년, 에펠탑을 마주한 프랑스 파리 샤이오극장에선 종묘제례악이 울려퍼졌다. 느린 선율과 몸짓의 품위있고 우아한 전개에 1250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K팝 못잖은 찬사를 보냈다. 당시 샤이오극장의 디디에 데샹 극장장은 “종묘제례악은 시간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이 있다”며 “한국 문화의 뿌리를 보여주는 공연으로 지금까지 볼 수 없던 다름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당시 공연실황은 지난 2월 설을 맞아 국립국악원이 온라인으로 공개해 한 번 더 화제가 됐다. “우리 역사가 탄생시킨 최고의 예술걸작”이라는 흔치 않은 반응도 이어졌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공연계엔 단골 레퍼토리가 등장한다. 클래식은 베토벤의 ‘합창’, 발레는 ‘호두까기 인형’. 대중적 인지도는 덜 하나 전통음악에도 중요한 레퍼토리가 있다. 바로 ‘종묘제례악’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 무형문화재 1호인 종묘제례악은 조선왕조의 역대 제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인 ‘종묘’에서 그들을 기리는 제사인 ‘종묘제례’를 지낼 때 쓰인 기악과 노래, 춤이다. 악(樂), 가(歌), 무(舞)가 어우러져 조선의 건국 이념과 철학을 담아낸 찬란한 궁중문화다. 종묘제례악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지 20주년이 되는 올해에도 송년공연(22~24일, 국립국악원)은 이어진다.

김영운 국립국악원장은 “종묘제례악은 무탈하게 살게 해준 조상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내년에도 보살펴 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과거의 의미를 확대해 종묘제례악을 통해 한해를 잘 정리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자는 의미에서 기획했다”고 말했다.

종묘제례악을 만든 작곡가는 세종대왕이다. 당대에는 국가의 제사를 지낼 때 중국에서 건너 온 문무제례악을 사용했다. 여기에 의문을 품은 이가 세종이었다. “살아서는 우리 음악을 듣고, 떠날 때는 중국 음악을 듣는다는 것에 반기를 들어” 종묘제례악을 만든 것이다. 이후 “세조 10년 때 세종이 작곡한 음악을 종묘제례악으로 제정했다”는 것이 국립국악원의 설명이다.

국립국악원과 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고취악과 향악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음악을 만들었고, “막대기를 땅땅 짚으며 하루저녁에 음악을 완성했다”고 기록됐다. 김 원장은 “지금 표현하면 민요로 볼 수 있는 향악을 국가음악에 사용하기 위해 악기 편성, 박자 등의 대원칙만 세워두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했다. “고려가요인 향악을 바탕으로 한 만큼 궁중음악인 종묘제례악에서 그 당시 백성들이 즐겨 부르던 선율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특별한 의미”라고 김 원장은 덧붙였다.

음악은 역대 왕들의 ‘무공(국방 업적)’을 찬양하는 정대업 11곡, ‘문덕(문화 업적)’을 기리는 보태평 11곡으로 구성된다. 각 곡마다 2~3분 길이의 짧은 분량이다. 세종 때 처음 작곡할 당시 정대업은 총 15곡이었으나 세조 때 종묘제례 의식으로 맞추기 위해 11곡으로 추려졌다. 이 음악을 바탕으로 가로 세로 여덟 줄로 64명이 사각형으로 늘어서 춤을 춘다. 전통적인 방식의 종묘제례악이 보여주는 무의 형태다. 문덕을 찬양할 땐 피리 등의 상징물을, 무공을 찬양할 땐 나무로 만든 칼과 창을 들고 춘다.

종묘제례악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특별한 메시지를 전한다. 김 원장은 “우리 국악의 다양한 장르 중 과거 전통사회 지배계층이 생각했던 사상이 종묘제례악에 담겼다”며 “질서(예)와 조화(음악)가 균형을 이룰 때 나라가 잘 다스려진다는 예악사상의 근본은 오늘에도 통용된다”고 말했다.

종묘제례악이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높은 것은 한국 전통예술의 정수로, 600년 가까이 중단 없이 지속된 드문 음악이기 때문이다. 종묘제례악은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복원되며, 공연 콘텐츠로의 다양한 확장을 시도해왔다. 국가 최고의 의례라는 문화재로의 가치를 넘어 음악과 노래, 춤이 어우러진 종합예술로서 무대에서 선보이는 작업이 한켠에서 이어온 것이다. 국립국악원은 그 중심에서 공연예술로의 종묘제례악을 수면 위로 올렸다.

김 원장은 “종묘제례는 국가 최고 의전인 만큼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이 다소 반영돼 있다”며 “시기마다 종묘제례악은 조금씩 달랐고 국립국악원에선 기록에 따라 각 시기의 것을 복원하고 선보였다”고 말했다.

1999년 종묘제례악 전막을 극장 공연예술로 처음 선보였고, 2005년엔 ‘종묘의궤’(1706)를 근거로 집박(執拍, 박을 치며 지휘하는 사람)과 악사, 일무(佾舞, 종묘제례 때 추는 무용)의 복식을 고증했다. 2009년에는 종묘제례악의 현악기 선율을 되살렸고 노고, 노도 등의 악기의 연주를 더했다. 올해 송년공연에선 2005년 고증한 복식을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다. 현행 종묘제례악은 대한제국기에 행한 일무 복식인 붉은 홍주의를 착용했지만, 이번엔 종묘의궤 기록을 살려 파란 남주의를 선보인다. 국립국악원의 송년 공연을 연출한 남동훈 연출가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인 고증 작업을 거듭한 종묘제례악이 문화재로 멈춰있지 않고, 품격 있는 공연 콘텐츠로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묘제례악은 전통의 복원을 넘어 가치를 이어받아 변화하고 진화하고 있다.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HAEPAARY·작은 사진)’는 종묘제례악을 소위 ‘요즘 음악’으로 들려주는 전무후무한 팀이다. 해파리는 올초 첫 싱글 ‘소무-독경’을 통해 종묘제례악을 앰비언트(반복적이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멜로디 구조를 부각하는 인스트루멘탈 음악)와 테크노를 아우른 팝 음악으로 선보였다. 노랫말 역시 세종이 지은 정대업을 따와 주술처럼 외고, 일무 역시 지금의 퍼포먼스로 바꿨다. 전자악기가 만들어내는 음악에 세종이 작사한 노랫말과 영어를 섞으며 춤을 추는 해파리의 무대는 전 세계에서도 볼 수 없는 21세기형 종묘제례악이다. 전문가들은 “공적을 기리기 위한 ‘상징의 집합체’인 종묘제례악을 지금의 음악과 퍼포먼스로 다시 선보인 해파리는 탈전통 시대의 새로운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