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모(32)씨 “야근은 개발시대를 살았던 선배들의 기업문화”
임모(34.여)씨 “야근하는 직원은 업무 처리 능력이 부족한 직원으로 인식”
이모(27.여)씨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을 능력으로 보는 직장문화가 문제”
장모(28.여)씨 “야근은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투자”
이모(29)씨 “야근은 나를 프로페셔널로 만드는 훈련 과정”
김모(31)씨 “야근은 100% 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헤럴드경제=최진성ㆍ신동윤 기자] 야근은 대부분의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불가피하다. 야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당일 처리해야 할 일이 쌓여 야근하는 ‘자발적 야근’과 상사의 갑작스런 지시나 눈치 때문에 퇴근하지 못하는 ‘비자발적 야근’이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도 두가지다. 본인의 능력 부족이거나 기업 문화다.
야근을 할 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돈, 즉 야근수당이다. 직장인에게 야근수당은 동기요인이다. 회사 입장에선 인건비 부담으로 작용한다. 때문에 회사는 돈이 안드는 비공식 야근을 선호하고, 직장인은 제대로 된 보상 체계를 요구한다.
야근할 때 노동생산성은 정규 근무시간보다 높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비효율적이지만 생산성이 전혀 없지 않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야근을 끝낸 직장인의 성취감과 늦은 시간까지 함께한 동료들과 결속력도 다질 수 있다.
먹고 살기 바빴던 베이비부머세대에게 ‘의무’였던 야근, 젊은 직장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다음세상을준비하는다른연구소’(이하 다준다연구소)는 지난 13일 오후 서울 공덕동 생각공방 온빛터에서 ‘칼퇴근이 뭐예요?’라는 주제로 야근대담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이날 야근을 제쳐놓고 나온 다양한 직종의 직장인들이 모였다. 사회생활 3~6년차 젊은 직장인의 야근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토론자들의 요구로 신분과 직장은 익명으로 처리했다.
▶사회(이동학 다준다연구소 소장)=야근은 왜 하는가.
▷김모(31ㆍ대기업 근무)씨=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한번도 내가 맡은 업무가 끝났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회사가 문을 닫지 않는 한 일은 계속 생기기 마련이다. 굳이 야근까지 하면서 끝나지도 않을 일을 계속해야 하는가. 결국 조직(기업)문화라고 본다.
▷정모(32ㆍ제조업체 근무)씨=비슷한 생각이다. 야근은 개발시대를 살았던 선배 직장인들이 만든 기업문화다. 수직적 조직문화인 한국 기업의 특성상 윗사람이 야근하면 대리나 사원, 인턴까지 야근을 하게 된다. 위에서부터 제 시간에 퇴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임모(34ㆍ여ㆍ증권회사 근무)씨=잠시 미국계 금융회사에 있을 때 야근을 하면 미국 본사에서 문의가 들어온다. 일이 너무 많다면 사람을 더 뽑아주겠다고 했다. 이면에는 업무 처리 능력이 부족한 직원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모(27ㆍ여ㆍ공무원)씨=직장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을 ‘능력’으로 보는 직장문화가 있다. 실제로 업무 실적보다 야근을 많이 해서 승진하는 사람도 봤다. 일이 없어도 윗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늦게까지 앉아 있는 게 야근이다.
▶사회=야근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봐야하는가.
▷장모(28ㆍ여ㆍ외국계기업 근무)씨=야근은 내가 원하는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투자이다. 야근하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 인정 받을 때 짜릿한 성취감도 맛볼 수 있다. 몸은 힘들지만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이모(29ㆍ공공기관 근무)씨=야근은 스스로 맡은 일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고민하고 이를 시행함으로써 어제보다 더 나아진 내가 되는 과정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 분야에서 자신을 ‘프로페셔널’하게 만드는 훈련 과정이다.
▷김씨=정규 근무시간에는 잡무가 많아 내 일에 100% 투자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야근을 하면 오롯이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늦은 시간 책상에 불을 켜놓고 셔츠 소매를 걷어올린 채 보고서를 준비하는 내 모습을 보면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정씨=우선 예측 가능한 야근이면 거부감이 덜 든다. 특히 야근을 하면 평소 얘기하지 못한 동료들과 친해질 수 있다. 회사 구성원으로서 소속감이나 결속력도 갖게 된다.
▶사회=내가 상사라면 야근을 시킬 것인가.
▷이씨=후배들에게 야근을 시키는 상사가 능력있다는 평가를 받는 게 기업문화다. 직원들을 잘 관리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야근을 많이 시키는 상사가 승진도 빨리 한다. 야근을 시킬 수밖에 없다.
▷임씨=야근을 아예 없앨 권한을 쥔 ‘사장’이 되지 않는 이상 싫어도 야근을 시켜야 한다. 회사에 나만 있는 게 아니다. 다른 부서장의 눈치를 봐야하고 경영진의 업무 평가도 감안해야 한다. 다만 합리적인 야근문화를 정착시키는데 기여하겠다.
▷김씨=다른 부서와의 경쟁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야근을 통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반드시 잘못된 방식은 아니다. 대신 따뜻한 말 한마디를 던져주는 상사가 돼 야근하는 후배들을 위로해주겠다.
▷이씨(여)=‘프로’라면 야근을 해서라도 자기 업무를 끝내야 한다. 다만 ‘선배가 안 가는데 니가 먼저 퇴근해?’라는 식의 불합리한 야근은 시키지 않겠다.
